일본여행 썸네일형 리스트형 [포토에세이] 무구無垢함이 사라져도 무구無垢함이 사라져도 여름에 겨울 냄새 : 2010년 겨울 도쿄 그저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만 19세에 오사카로 유학을 떠나 맞이한 겨울방학 때였다.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일본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난 도쿄에 가고 싶었다. 여행 책을 보며, 언제 가게 될지도 모르며 계획을 세웠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모키타자와는 이런 곳이겠지', '아사쿠사는 저런 곳이겠지'하고 내 안의 도쿄는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한 그릇에 100엔인 면과 국물만 있는 우동만 먹으며 버티던 시절이라 신칸센은 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야행 버스였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긴장했던 탓일까,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달리는 8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신주쿠에 내던져.. 더보기 [화양연화]가을편 화양연화 : 가을 편 높은 습도로 통 속의 찐만두가 되었던 지난 계절을 생각하면, 공기에 선선함이 묻어나오는 가을은 짧아도 감사한 계절이다. 나는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유독 여름에는 수면을 부유하는 해파리처럼 활기를 잃고 지내기 일쑤여서, 겨울로 넘어가는 가을의 아이덴티티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천고마비의 가을이라고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는 게 아주 좋다. 무나 가지, 밤같이 가을 하면 꼭 먹어줘야 할 식자재가, 누구나 마음속 한 켠에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버섯인데, 전술과 달리 버섯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팽이버섯이나 양송이와 같이 도시에서 주로 소비할 법한, 그리고 이미 인공재배가 가능한 종류의 버섯만을 먹어왔었다. 그런 나에게 회사 팀장님의 나가노(長野)로 떠나는 버섯 따기 여행 제안은,.. 더보기 첫, 처음 ⑤: 일본에서의 '첫 여행' 첫 여행 : 히메지(姫路城)와의 만남 오사카에서 시작한 일본 생활 첫 해, 워킹홀리데이 당시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본인 동료들은 ‘칸사이에 산다면 반드시 히메지성에는 가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따라 일본 전국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살았지만, 정작 유명 관광지 한 번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나를 위해 동료들은 친절히 안내 책자까지 쥐어주며 등을 밀어주었다. JR 오사카역에서 JR 고베선으로 환승해 약 한시간 가량, 특별한 계획도 없이 그저 동료들의 말을 따라 훌쩍 떠나 만난 히메지성은 '일본에서 히메지성을 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이다'라는 그들의 말을 증명하듯, 그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새하얀 성과 공원을 둘러싼 벚꽃으로 화려함에 화려함을 수놓은 풍경은, 몇 .. 더보기 [화양연화]겨울편 화양연화 : 겨울편 겨울이 되어 쌀쌀해지면, 괜스레 온기 같은 것이 그립기 마련이다. 고향의 겨울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도쿄가 춥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두 손 다 써도 셀 수 없는, 일본에서 보낸 겨울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겨울을 적어본다. 때는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이던 2012년 겨울. 커플이건 가족이건 모두가 단란한 새해의 기대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애틋한 가운데, 혼자 성냥팔이 소녀 같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을 만나 온기를 취하기에는 비행기 삯이 터무니없이 비싸져 있었고, 그렇다고 나 빼고 모두가 따뜻한 이 도시에 홀로 생활하고 있다가는 심리적 추위에 져 엉엉 울며 연말연시를 보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도쿄만큼, 내가 자란 .. 더보기 [화양연화]프롤로그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일본에서 보냈다. 10대의 끝자락에 도쿄의 한 미술대학에 진학해, 20대의 끝자락에서 1년 늦은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과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들썩이는 일본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보낸 10년의 이야기를 여기에 풀고자 자그마한 자리를 얻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일본에서도 확산세였던 2020년 겨울, 나는 일시 귀국했다. 회사가 감사하게도 여러모로 사정을 봐주어, 한국에서 한 달간 재택근무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처음 발을 딛는 인천 국제 공항에서 유증상자로 분류되어 코가 쑤셔지는 가운데, 나는 생각했다. 살았다. 당시의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편도 1시간 거리의 회사에 가기 위해 텅 빈 토자이(東西)선을 타면서, 내가 탄 차량의 창문이 전.. 더보기 [일본여행]나가노현 가미코치에서의 우중 산책 재택근무 2년 차,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집에서만 생활한 지 2년이 되어가자 이제 집안일의 달인이 되다 못해 집에서 혼자 노는 것에도 도가 텄다.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어느새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나날들의 연속,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진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다. 이 좁은 방을 벗어나 광활한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욕망! 바다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내 친구는 이런 현상을 ‘혈중 바다 농도가 떨어진 상태’라고 표현하던데, 그렇다면 나는 비슷한 맥락으로 ‘혈중 여행 농도가 떨어진 상태’일 것이다. 이 여행농도를 올리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 그렇게 결정한 여행지는 나가노에 있는 가미코치(上高地)다. 가미코치는 나가노현(長野)에 위치한 ..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