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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

[일본생활]일본에서 보내는 추석 도쿄에서 맞이하는 일곱 번째 추석이다.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명절 요리를 만들었다. 명절 요리에 빠질 수 없는 갈비찜과 잡채. 올해는 바라마지않던 넓은 주방을 갖춘 집으로 이사했기에, 명절 요리의 가짓수를 늘려볼까 싶어 모둠전을 추가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한 오랜 벗이 예정보다 일찍 찾아왔다. 도와줄 거리를 찾지만, 손님은 손님. 의자에 앉혀 말 상대를 부탁했다. 여느 친구사이가 그렇듯,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빚어둔 동그랑땡을 부치고 있을 때쯤, 친구가 물었다. "이렇게 요리에 열성인 이유가 뭐야?"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이렇게 답해주었다. "향수병을 이기기 위한 나만의 처방전같은거야. 어떤 요리들은 엄마의 요리를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고, 또 어떤 요리들은 그 요리들과 함께 했던 .. 더보기
[에세이]住めば都:정들면 고향 어디까지를 우리는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향을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고 하면, 태어난 곳은 알겠지만, ‘자라다’라는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정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나 ‘국경’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자신이 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해 이주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예컨대 이민 1.5세대나 흔히 말하는 ‘교포’는 어디를 고향이라고 부를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우리가 사는 곳이 한국과 가까운 일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이방인처럼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나를 타자(よそ者)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았던, 얼마나 익숙하던 영원히 이방인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할퀴어도 찢어지지 않는 얇고 투명한 막이 나를 .. 더보기
[화양연화]여름 편, 에필로그 일본에서의 마지막 여름 새파란 하늘 위로 소프트콘처럼 떠 오른 적란운, 초록 잎 사이로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보여주는 짧은 소매의 하얀 궤적, 처음 일본 문화에 접했던 그날부터 세뇌당한 일본의 여름. 실상을 안 지금도 일본의 여름은 그렇게 남았다. 관념적이고, 낭만적으로. 화양연화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한 2020년 겨울부터 시작된 내 강박증은 나를 갉아먹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잔업과 일본 정부의 어설픈 방역 대책으로 인한 불안감, 기침 및 마스크 착용 등의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피로의 축적은 감정 통제가 힘들어지는 병증으로 이어졌다. 과도한 정신력 소모에 심료 내과에 통원한 봄부터 진지하게 퇴직 의사를 회사에 비쳤다. 선배 디자이너에게.. 더보기
[PICK UP]일본생활에 지친 나를 달래주는 소울푸드 일본 생활이 지치고 피곤할 때, 그럴 때 꼭 먹어줘야 하는 나만의 소울푸드 일 하느라 힘들었죠, 맛있는 밥 먹고 또 힘내서 일합시다. 규카츠 언제 처음 먹어봤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거나 힘을 내고 싶은 일이 있거나 축하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혼자서 규카츠를 먹으러 가는 것이 언제부턴가 내 습관이 됐다. 각오를 다져야 하는 일을 앞두고 돈카츠 ( かつ=勝つ, 카츠’는 ‘이기다’의 동사와 동음이의어라 기합을 넣는 의미로 돈카츠를 먹는 문화가 있다 )를 먹는 일본인들의 문화보단, 월급 타면 소고기를 사 먹는 한국인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 자부한다. 두툼한 소고기에 튀김옷을 얇게 입힌 후, 겉만 바삭하게 튀겨내어 흰 쌀 밥과 함께 내는 규카츠 정식. 규카츠는 돈카츠와는 달리 속은.. 더보기
[포토에세이]Same not same 매일 아침 7시 출근길, 2달의 기록 해가 바뀌고 시작된 시간차 출근. 평소보다 1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하며 비몽사몽 출근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 근처 육교를 지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보게 된 하늘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 날이 있었다. 그날부터 찍기 시작한 출근길 하늘은 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천천히 하늘을 눈에 담다 보면 어느새 졸음은 사라지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어제와 오늘이 별다를 것 없다고 이렇다 할 기대가 없이 반포기 상태와 같던 아침이, 그렇지 않다고 같은 날은 없다고 우리는 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계속.. 더보기
피어라 민주주의의 꽃 : 재외국민투표를 다녀오다 2월 내내 진행된 일본 재외국민투표, 많은 분들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참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들 손등에 도장 하나씩 찍고 오셨나요?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낸 값지고 소중한 한 표 이야기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이웃 여러분들의 사진과 소개, 감사드립니다! 일본대사관 신주쿠 재외투표소에서 안녕하세요 도쿄에 사는 2년 차 마케터 시온(詩音)입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듣고 향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본대사관 신주쿠 재외투표소에서 도쿄에 살고 있는 30대 입니다! 일본대사관 신주쿠 재외투표소에서 해외 투표는 처음이어서 긴장도 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 선거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저의 소중한 한 표를 낼 수 있어서 기뻤어요. 일본대사관 신주쿠 재외투표소에서 어느덧 8년차 직장인.. 더보기
첫, 처음 ④: 일본에서의 첫 '일본인 친구' 첫 친구, 날 응원해 준 너의 따스함. 인생에서 처음 생긴 내 일본인 친구, 하루(ハル), 시작은 펜팔이었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인과,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일본인이 만났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라 서로가 서로의 나라에 가지 않고서는 직접 만나긴 어려웠고, 그저 가끔 연락을 주고 받으며 언어를 가르쳐 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기를 1년, 우연히도 나는 하루가 사는 사가 현의 회사에 취직을 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하루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신나 보였던 하루는 나를 차에 태우고 그 지역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여기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바다야, 이 식당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오던 식당이야. 너도 이 지역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고 재잘대며, 자신의 고향에서 .. 더보기
첫, 처음 ③: 일본에서의 첫 '아르바이트/직장' 원래 편의점은 이런 건가요? 일본에서의 첫 아르바이트는 내 인생의 첫 알바였다. 제일 만만한 게 편의점이라는 말을 듣고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고 직주근접을 강력하게 주장한 엄마의 의견에 따라, 당시 살던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골랐을 뿐이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일도 어렵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친절했다. 하지만 문제는 갈수록 조금씩 드러났다. 처음엔 근무자용 이름표를 발급해 준다고 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있는 편의점의 저녁타임에 일했던 터라 손님을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알바생은 나 혼자였다. 심지어 젊은 독신 가구보다는 가족단위가 많은 주거단지가 밀집한 동네라 더욱 바빴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4일을 5시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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