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 겨울편
겨울이 되어 쌀쌀해지면, 괜스레 온기 같은 것이 그립기 마련이다. 고향의 겨울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도쿄가 춥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두 손 다 써도 셀 수 없는, 일본에서 보낸 겨울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겨울을 적어본다.
때는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이던 2012년 겨울. 커플이건 가족이건 모두가 단란한 새해의 기대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애틋한 가운데, 혼자 성냥팔이 소녀 같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을 만나 온기를 취하기에는 비행기 삯이 터무니없이 비싸져 있었고, 그렇다고 나 빼고 모두가 따뜻한 이 도시에 홀로 생활하고 있다가는 심리적 추위에 져 엉엉 울며 연말연시를 보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도쿄만큼, 내가 자란 고향은 눈이 잘 안 온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인이 된 지금도 눈이 내리면, 교통상황 걱정보다 눈이 쌓이길 바라게 된다. 겨울의 여행자가 된 김에 나는 눈을 실컷 보고 싶어졌다. ‘추워서 더 눈이 잘 내리겠거니’ 생각하고, 그렇게 무작정 북쪽으로 떠나는 여행 채비를 시작했다.
당시는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년 하고 조금이 지난 시절이었다. 겨울 방학 계획을 묻는 사람들에게 동북쪽으로 갈 거라고 하면, 걱정하고 말리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안심시킨다고 내가 한 소리는, 후쿠시마에는 내리지 않을 거라는 것. 안심되었을까, 아마 말려도 소귀에 경 읽기라는 것만 깨달았을 것 같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으므로, 내가 동북쪽으로 가기 위해 선택한 수단은 청춘 18 티켓이었다. 혹여 청춘 18 티켓을 모르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급행 혹은 특별호 등 고속 차편과 기간이나 구간이 한정된 이벤트성 차편을 제외한 모든 JR의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인데, 한국의 내일로의 대상 연령이 없는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5일간 이용할 수 있고, 하루에 교통비 2,410엔어치의 거리를 이동하면 이득이다. 기본적으로 일반 열차만 탈 수 있으니,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느 정도냐면, 도쿄에서 후쿠시마를 통과하여 센다이에 약 7시간을 소요해야 도착할 수 있을 정도?
그렇게 긴 시간을 길에 버려 엉덩이의 감각이 가물가물할 즘, 센다이에 도착했다. 나에게 센다이는 다년간의 오타쿠력으로 배구 만화 <하이큐-!!>의 배경지, 전국시대 무장, 다테 마사무네의 권역이었다는 점밖에 없었다. 도착한 센다이는 눈이 내리고 있지 않았다. 이미 쌓인 눈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추위도 고향 정도의 추위라 괜히 두꺼운 패딩을 들고 왔나 싶을 정도였다. 눈 내릴 긴 여행길에 대비해 짐을 한 보따리 꾸렸더니, 짐이 말 그대로 짐이 되었다. 서둘러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짐을 맡기고 다시 나와 일본 삼경, 마츠시마(松島)로 향했다. 나한테 場所(ばしょ)를 잘 못 치면 나오는 인명으로 더 친숙한 芭蕉(松尾芭蕉 まつおばしょう, 에도시대 전기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가 <奥の細道>에서 절찬했다고 하는,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옛날, 바쇼가 봤던 그 마츠시마를 나는 더는 볼 수 없었다. 물론 현대로 오면서 많이도 바뀌었지만, 유목이 떠다니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3.11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 같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행객, 어두운 구름 낀 하늘에 마츠시마 풍광이 그리 어여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사람. 칸란테이(観瀾亭)에 오르기로 했다.
칸란테이는 마츠시마만(松島湾)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그 옛날 미야기 현을 중심으로 한 영지를 다스렸던 다테 가의 사람들이 달을 보러 오던, 우아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입장료와 별도로 메뉴에 따라 500엔에서 700엔 정도를 더 내면 말차와 화과자를 준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 입장객이세요. 화과자와 말차를 내어주는 안내사분께서 말씀하신다. 건네받은 말차를 들고, 어떻게 마시면 되나요? 묻는 내 질문에 안내사분께서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채로 그냥 그대로 마시면 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화끈해진 얼굴을 돌리고, 마츠시마의 풍광을 보면서 말차 한 모금, 화과자 한 입. 하긴, 이렇게 맛있고 예쁜데, 내가 알아서 즐기면 되지. 그럼, 그냥 마시면 되는 거지. 칸란테이에 올라 희끄무레한 하늘 아래 새빨갛고 긴 후쿠우라 다리 (福浦橋)가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풍경을 말차와 약간은 텁텁한 화과자와 함께 내려 보는 것은 바쇼도 못 봤을 나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니.
그외에도 꼬박 3일을 센다이를 대표하는 즈이호우덴(瑞鳳殿), 아오바 성 혼마루(青葉城本丸) 등을 여행하며 보냈다. 청춘 18 티켓을 산 행동력까지는 좋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던지라, 첫날의 마츠시마 근처 관광을 제외하고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귄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한국에 대해서 매우 잘 아셨던 남자 사장님, 안 되는 일이더라도 No와 함께 다른 대안을 꼭 가지고 오셨던 여자 사장님, 교사를 지망해서 나에게 센다이 번 역사를 가르쳐준 이시다 씨, 고집 센 나를 중심으로 여행 계획 짜서 같이 돌아다녀 준 토모코 씨와 함께 해준 왕 씨까지. 혼자 떠난 여행에 좋은 추억을 아로새겨 준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 무계획 칠락팔락이 무사히 여행을 끝낼 수 있게 히카루 씨는 무려 자기가 갖고 있던 전국판 컴퍼스 시각표를 건네주며 보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이 전국판 컴퍼스 시각표의 가치가 와닿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전국의 JR 모든 노선의 시간표로 <다빈치 코드>책만 한 두께를 가진 가벼운 책이다. 청춘18 티켓 룰을 검색하는 툴이 유료였던 그 시절, 그녀가 가르쳐준 룰대로 책만 펼치면 알 수 있었으니, 거의 청춘18 티켓의 성서라고나 할까! 나는 그녀를 교통의 천사님이라고 불렀는데, 여기 그 천사님이 내려준 계시를 게재한다.
적혀 있는 대로 나의 다음 여행지는 하치노헤(八戸)였다. 모리오카(盛岡)를 걸쳐 하치노헤로 가는 길, 센다이에서는 잠잠했던 눈이 이와테현(岩手県)을 지나는 여정을 함께 하겠다고 세차게 내렸다. 눈 오는 고장의 전철 문은 문 옆의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는 한, 열리지도 않으니 여기가 어딘지 모호한 상태로 몇 시간을 내리 잠만 잤을까. 잠시 멈춘 역의 이름이 잠이 덜 깬 내 눈에 들어왔다. 金田一温泉駅! 맙소사, 저기 가면 김전일 세계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하며 즐겁게 잠에서 깼다. 앞으로 30여 분 이면 하치노헤였다. 선악과를 먹어버린 아담과 이브의 후손답게, 교통의 천사님 계시대로 하치노헤에 이른 오후에 도착하지는 못 했다. 그 때문인가. 하치노헤 역에서 나오는데 이 차원이 다른 추위는 무엇인가! 아직 저녁때인데, 이렇게 어둡다고? 이렇게 춥다고? 당황하는 내게 선택지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예약해 둔 호텔로 들어가는 것. 무사히 체크인했건만, 저녁을 먹지 못했다. 체감 추위로 따지면, 중국 장춘에서 -30도라는 눈을 의심케 하는 기온 속에서 체육 수업을 받았던 초등학생 때와 비교해도, 하치노헤가 압도적으로 춥게 느껴졌다. 검색으로 맛집을 찾을 기력마저 없어, 역 앞에 있던 로손으로 갔다.
하치노헤까지 와서 로손?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혹한 추위 앞에 무력해졌다. 평소 로손 하면 빵이었겠지만, 살아있는 고드름 같은 나를 녹이려면 국물이 필요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오뎅 칸 속은 안타깝게도 츠쿠네도, 치 쿠와도 롤 캬베츠도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무와 곤약들. 오뎅 속 무는 국물 빼는 용도라고 생각해서 입도 댄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국물 듬뿍과 무 두어 점을 부탁했다. 그리고 찾아온 선택의 시간. 소스는 뭐로 드릴까요? 하며 보여준 통 안에 내가 본 적 없는 소스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생강 미소. 하치노헤는 아오모리현(青森県)인데, 이 생강 미소가 아오모리현의 소스라고 한다. 내 안의 구르메 영혼이 밥은 편의점 일지언정, 소스는 그 지방 특유 소스다! 하며 외쳤다. 온통 새까맣고, 부연 도시의 설경을 가로질러 안온한 내 호텔 객실로 돌아와 오뎅을 집었다. 몇 시간을 국물 속에서 뒹굴었을지 모를 육수 맛이 잘 배어든 부드러운 무가 달큼한 된장 소스와 만나 살큰하게 녹아내리는데, 버틸 수 있는 장정이 있을까. 추위에 서러웠던 마음도, 내가 선택한 주제에 이 추위에 뭐하냐 하는 현타도, 이제야 떠오르는 엄마 생각도 따뜻하게 녹아 똑똑 눈물로 떨어졌다.
드디어 2013년 1월 1일. 새해 첫날. 나는 5시에 다시 깨 타네사시해안(種差海岸)역으로 향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새 해를 보기 위해서. 그냥 바다도 아니고 태평양에서 떠 오르는 새 해. 부산에 가면 날씨가 좋으면 츠시마(対馬)가 보인다.라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를 들었던 어렸을 때부터, 대한해협 건너편에는 일본이 있어서 내가 볼 수 있는 바다 끝에는 일본으로 막혀있고, 더 넓은 바다는 일본에서도 다시 동쪽이어야지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그쯤 되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님에도 답답하게 느꼈다. 그러니까 태평양의 수평선은 뭔가 다를 것 같았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타네사시 해안역에서 내리는 모든 이들에게 동지애를 느 끼며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서서히 부는 바람의 세기가 달라졌다. 내리막길 끝, 본 적 없는 광활한 들판이 펼쳐졌다. 어렴풋이 환해지는 하늘에 감동하고 있는데, 불현듯 어떻게든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이 귀가 잘려 나갈 듯한 세찬 바람도, 존재는 인지할 수 있어도 형체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찍힐 리 없는 어둠 속에 우연히 옆에 서 있던 자매(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호구조사를 했던 것 같다)를 찍어도 되냐고 물었고, 그녀들은 흔쾌히 ok 해줬다. 그녀들이 찍힌 사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하. 수평선을 가린 짙은 구름 때문에 안타깝게도 애국가 영상에서나 볼법한 수평선 위로 반듯이 올라오는 일출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공간에서 내가 알 지도 못할 저 멀리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구름을 비집고 떠오르는 태양은 뻥 뚫린다는 기분이 뭔지 알려줬다.
한국어로 다음 한 해의 무사와 한국의 가족들의 안녕을 빌고, 서서히 밝아져 오는 태평양 수평선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쿠도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 아저씨는 전망대가 있다며 알려줬고, 우리는 같이 올라가기로 했다. 부산의 관광지에 으레 있던 이 방향은 츠시마라는 안내가 이 전망대에서는 <이 방향, 태평양・아메리카> 라고 적혀 있는데 이유 모를 후련함이 내게 찾아왔다. 더 큰 바다를 찾았다는 후련함. 쿠도 씨는 친절하게도 하치노헤 역까지 나를 태워주었다. 1월 1일의 마법이었던가, 만나는 사람마다 착해서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 같다.
먹겠다고 찾아둔 남부센베이 가게도 가지 못한 채, 아오모리(青森)로 올라갔다. 긴 승차 시간에 잠만 자기에도 머리가 아파질 무렵, 나는 듬성듬성 앉은 승객들을 크로키하기로 했다. 몇 번을 열리고, 닫히고, 가다 서다 하는 열차. 그런데 갑자기 전에 없이 긴 텀으로 정차하는 게 아닌가. 들려오는 차장님의 목소리는 꿈결같이 웅얼거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아까부터 내 크로키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주머니한테 말 걸기로 했다. 눈이 심해서 잠시 멈춘 거라고, 눈보라가 약해지면 움직인단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그림 잘 그리네. 칭찬에 경계를 낮춘 나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 여행객이라는 이점을 살려 살갑게 앞으로의 여정을 떠들었다. 아오모리에 산다는 아주머니는 하치노헤에 친척을 만나고 다시 돌아간다길래, 나 아오모리에는 처음 간다, 뭐가 좋냐, 뭐가 맛있냐고 여행객다운 질문을 했다. 이럴 수가, 3분간을 신이 나서 말씀해주시는데, 아주머니의 호쾌한 동북 방언에 내가 알아들은 것이라고는 가리비, 딱 하나였다. 방금까지 알아들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그렇군요, 좋네요. 밖에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아주머니가 말을 더 걸기 전에 자는 척을 했다. 그 자는 척 끝에 나지막한 빙벽들이 생긴 아오모리 역이 있었다.
일찍 아오모리로 올라간 이유는 하나,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불퉁하고 못마땅한 듯한 얼굴의 작은 아이 그림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곳, 게다가 사인 디자인과 아이덴티티가 매우 잘 정리되어 있어 디자인 전공인 사람으로서 한 번쯤 가고 싶은 곳이었다. 우산을 쓰고 눈을 막으며 도착한 그곳에 고요히 서있는 새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픽셀로만 보던 그림을 실물로 볼 때의 감동은 퍽 색다른 법이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 크레용 질감이 행복하다.
길을 헤매다 보면 아오모리견(青森犬)을 만날 수 있다. 거대한 흰 개가 조용히 떨어지는 눈을 묵묵히 맞고 있는 풍경을 목도하게 되면, 크기와 상관없이 형언할 수 없는 압도감에 작품과 나만 있는 것 같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의 굿즈와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굿즈를 바리바리 산 것까지는 좋았다. 택시를 잡아 다시 아오모리 역으로 돌아가는데, 손에 든 짐 하나가 사라졌다. 약 4,000엔 하는 영국산, 손잡이가 기린 모양인 내 최애 우산! 택시기사 분과 함께 다시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싶어 찾아본 화장실에도, 분실물이 없나 들른 데스크에도 우산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심미안을 가진 도둑 선생님을 축복하며, 결국 택시기사 분과 아오모리 역으로 돌아왔다.
추운 겨울에 일부러 도쿄에서 올라온 외국인 관광객다운 너스레에 택시기사 선생님은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으로 다시 돌아간 값은 받지 않고, 아직 운영하는 관광지와 맛집을 알려주셨다. 그분이 가르쳐주신 가게 중에 기억에 남은 곳이 있다면, A-Factory이다. JR 아오모리 역 뒤편, 네부타의 집보다 더 뒤쪽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새하얀 건물이 있다. 아오모리의 특산물, 특히 사과를 주축으로 한 특산물 가게인데, 건물 안에 시드르(사과 발효주)를 만드는 공간도 갖고 있다. 손에 잡히는 특산물 패키지 하나하나 다 예쁜데, 사과를 워낙 좋아해서 품종별로 먹고 다녔던 사람이어서 더 지옥 같은 천국이었다. 이 정도는 사도 되겠지, 하고 샀던 토산품 중 맛있고 패키지가 너무 예뻐서 여전히 소중히 여기고 있는 제품이 이것. 언젠가 목격하게 된다면 한 번 맛보시길!
그렇게 알뜰살뜰 아오모리를 여행하고 아키타(秋田)에 도착하니, 눈발이 더 심하다.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며 궁상맞게 훌쩍이는 시야에 눈바람에 휘청거리는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여행 끝물에 돈 아끼자고 JR 아키타 역에서 먼 호텔을 예약한 내가 너무 미워졌다. 혼자 투모로우 찍은 끝에 도착한 호텔은 노천탕을 갖고 있었다. 추워도 꾸역꾸역 들어간 노천탕 속에서 눈발을 맞으며 기도했다. 내일은 제발 눈이 멈추기를. 기도한 덕분인지 아침 풍광이 제법 얌전해져 있었다. 대단한 적설 속에 여행지가 운영을 하는지 걱정된 터라 아키타 역 여행 안내소를 찾았다. 살갑게 관광지를 설명하시는 여행 안내소 직원 분으로부터 들은 청천벽력. 폭설과 三が日(원단부터 1월 3일까지의 기간. 보통 이 시기에는 일반기업도 관공서도 쉰다.)를 이유로 웬만한 곳이 쉰다고.
허망해도 배는 고픈가 보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씨처럼, “배가, 고프다...”를 중얼거리고 아키타 역에 붙어있는 상업시설, 토피코로 향했다. 아키타에는 정월 무렵에 나마하게(なまはげ)라고 불리는 도깨비 가면을 쓴 신의 사자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전통이 있다. 보통 빨간 가면, 파란 가면 페어로 다니는 편인데, 나무로 만든 식칼을 들고 큰 목소리와 걸걸한 아키타 방언으로 “우는 아이는 없는가! 나쁜 아이는 없는가!” 하는데 어린아이들은 다 울고 만다. 토피코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관광할 곳이 없어 실망한 이방인조차 더 이상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어디에서 왔을지 모를 신의 사자는 우연히 내 앞에 있던 아기에게 실력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말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인 아기조차도 생면부지 벌겋고 퍼런 무서운 얼굴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나마하게는 돌아갈 때조차 “내년에도 또 올 터이니, 착한 아이로 있어라. 안 그러면 데리고 갈 테니까”라고 한다는데, 저 조그마한 아기도 이 협박을 들었을까.
이렇게 용두사미가 된 여행의 귀갓길은 교통의 천사님이 기재해준 그대로 니이가타에서 문라이트 에치고라는 야행 쾌속 열차를 타고, 2013년 1월 4일 새벽, 도쿄 진입으로 끝이 났다. 약 1주일간의 설국에서의 긴 여행은 나에게 눈뿐만 아니라 사람의 온기도 알려 주었다. 돌아오자 한 일은 니이가타 역 NewDays에서 사 온 2013년 스이카 펭귄 다이어리에 8일간 동고동락한 청춘 18 티켓이 더 이상 너덜거리지 않도록 붙이는 것이었다. 뺨을 저밀 듯 불던 눈보라, 세찬 바람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온기와 닿았던 이 행복했던 기억을 쥐고, 또다시 시작된 일 년 힘내야지! 하고.
글, 사진: 도쿄도, 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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