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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NUMBER_2022上/2021.가을.vol.01

6월의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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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월 나는 직장이 아닌 과거의 나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보너스를 받았다. 총 47장의 공연 티켓에 해당하는 약 413,600엔의 환불금.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한 긴급사태선언 발령과 함께 일본 내 연극, 뮤지컬, 발레, 라이브 등 모든 공연 및 이벤트가 중지되었고, 환불이나 취소 표 혹은 양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일본의 공연 문화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노르마(Norma)’라는 용어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이 일본의 공연 문화가 돌아가는 가장 심장부에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Production Quota라고 하는 이 노르마라는 시스템은 공연 출연자에게 기본적인 수입을 보장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시작되었다. 주최자는 출연료의 일부를 돈이 아닌 티켓으로 제공하고, 출연자는 그 티켓을 팔아 그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다. 라이브하우스의 밴드 공연부터 크고 작은 콘서트, 연극, 뮤지컬 심지어 발레까지 일본에서 올라오는 거의 대부분의 무대 공연에 이런 노르마 티켓이 존재한다. 종종 “일본에서 하는 뮤지컬을 보고 싶은데 팬클럽이 아니면 티켓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네요”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이런 티켓 판매 시스템 때문이다.

 

  이와 같이 출연자의 기본 수입을 보장하기 위해 시작했던 시스템이었지만, 팬클럽을 통한 티켓 판매에 공연 컴퍼니들이 크게 의존하기 시작하며 각종 티켓 판매 창구에서는 매진인 공연도 팬클럽에서는 팔지 못한 티켓이 남아 앓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노르마 시스템 속의 티켓은 정말 출연자를 후원하는 팬의 마음으로 사는 티켓이기 때문에 취소라는 개념이 없다. 환불이라는 개념도 없다. 그냥 돈을 지불하면 끝인 것이다. 출연자 개인의 팬클럽 외에도 공연 컴퍼니의 유료회원 시스템, 발레단의 후원 시스템 등 팬클럽에 준하는 티켓 판매 창구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준해서 플레이 가이드나 카드 회사를 통해 구입 할 수 있는 티켓에도 취소나 환불, 혹은 양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공연계의 명과 암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티켓피아나 티켓캠프와 같은 암표 거래 사이트에서 티켓을 사고파는 행위가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2019년부터 도쿄올림픽에 발 맞춰 '특정 흥행 입장권에 대해 유상양도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고 각종 공연 단체에서 엄격한 본인확인 실시 혹은 당일 발권이라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암표 사이트에서 익명으로 티켓을 거래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한국이라면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라고 할 만한 일이 일본에서는 종종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럼 다시 코로나 19사태로 돌아와 보자. 사실 폭탄을 만든 것은 코로나가 아니라 도쿄 올림픽이었다. 강력한 유상 양도 금지법이 시작되며 암표 꾼들도 구속되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전차 선로 밑에 즐비하던 금권 샵(金券ショップ)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암표 거래 사이트의 대안으로 티켓피아에서는 해당 사이트에서 산 티켓은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그 사이트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판매 할 수 있는 서비스인 Clock라는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비록 지불한 원금을 모두 회수하거나 비싸게 파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갈 수 없게 된 공연의 티켓값 일부는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코로나 19사태다. 우선 환불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긴급사태선언에 준하는 요청이 발령된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나, 공연이 해당 지역에서 이뤄지는 경우 환불을 해주겠다는 공연 주최자가 등장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 환불이 불가능했던 그동안의 방침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물론 처음엔 우왕좌왕이었다. 카드로 결제한 티켓의 값을 카드 결제금액 취소가 아닌 현금으로 돌려주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환불 대상 티켓을 등기우편으로 보내주면 우편환으로 환급해주기도 했다. 그나마 발권한 편의점에 티켓을 반납하고 현금으로 바로 환불받은 경우는 양반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19사태가 장기화되며 조금씩 공연업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결제, 무통장 입금, 신용카드 결제, 우체국 지로 납부 등 다양했던 결제 방법을 축소하는 판매처가 늘어났다. 신용카드 결제나 자동 계좌이체 등 금융권과 연계해 관람자의 본인확인이 확실하게 가능한 방법이 대세가 되었다. 물론 결제 방법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점에서 무조건 긍정적인 변화라고는 할 수 없으나, 본인확인이 가능한 결제 수단으로 티켓을 사기 때문에 환불 시 티켓 반환 등의 별도 확인 절차 없이 간단하게 티켓 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소규모 팬클럽과 같이 전자 결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곳은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으나, 그 “아날로그”의 일본이 이런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무척 놀랍게 여겨졌다. 그에 이어 공식적인 양도라는 개념이 생겼다.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관람자 개인정보 제공이 필수가 되고 감염 예방 및 건강상의 이유, 의료 종사자와 같이 직업적으로 공연 관람이 힘들어진 사람이 증가하며 티켓유통센터(チケット流通センター )와 같은 암표 사이트나 오케피티켓(おけぴチケット)과 같은 비공식 티켓 교환 사이트가 아닌 공연 컴퍼니와 계약을 맺은 공식 시스템에 올라오는 티켓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티켓토레(チケトレ)라는 사이트는 처음 출범 당시 비싼 수수료로 인해 차라리 트위터 등을 통해 거래하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으나 현재는 하루 수천 장의 티켓이 올라오고 또 올라오자마자 팔려나가는 인기 서비스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어디선가 암표는 팔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웃돈을 주고 사는 암표가 아니라 정가의 표를 관람자의 명의로 양도받는다는 인식이 일본 무대 팬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라면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라고 할 만한 일이 일본에서는 종종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 원인은 몹시 다양하고, 또 다양하기 때문에 의문을 품어도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에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던 무대 장르 팬으로서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긴 하지만 ‘핀치는 찬스다(ピンチはほらチャンスだ)’라는 SMAP의 노래가사를 떠올리게 하는 6월의 보너스였다. 참고로 6월의 보너스 이후 지금까지 25장의 티켓이 또 나와 작별을 고하고 매달 소소한 보너스를 안겨주었다. 시스템의 발전은 마음 깊이 환영하지만 그를 위해 희생된 내 티켓이 세자릿수가 넘어가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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