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도착한 한국 하루만에 다시 일본으로
2020년 2월 말, 전문학교의 졸업작품 전시회를 마쳤다. 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 정도. 이 보름은 내 인생의 마지막 봄 방학이었다.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체계적인 봄 방학 계획은 이랬다. 시모노세키시(야마구치현)에 사는 친척을 뵈어야 해서, 부모님과 시모노세키시에서 합류하고, 거기서 부산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입국해, 부산 집에서 하루를 쉰다. 그리고 KTX를 타고 서울에 가서 대학 친구들 집에 묵으며 시간을 보낸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는 것. 일본 국내도 관동을 벗어나 본 건 처음이라 야마구치에서 보낸 시간도 즐거웠고, 부모님도 오랜만에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 그렇게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는 단계까지는 완벽했다. 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이 무색하도록 한국에서는 대구 지역에서 신천지발 집단 감염 사태가 터졌다. TV에서는 일본이 한국인 입국금지령을 내릴 거라는 뉴스가 하루 종일 흘러 나왔다. 이미 취직처의 입사 내정까지 다 받은 상황에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면 어떡하냐며 가족들 모두가 걱정되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결국 다음 날 오후, 서울은 고사하고 나는 부산에서만 맴맴 돌다가 김해국제공항에서 나리타행 비행기를 탔다! 정리하면, 2월 26일 8시에 부산에 내렸다가, 2월 27일 17시에 나리타로 돌아온 거다. 나머지 봄 방학은 입국 후 14일간 자가격리로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하루 간 어떻게든 한국을 만끽하고 싶어서 발버둥쳤던 그 하루의 사진들을 보면,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한국에서 느긋하게 쉬다 올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여행사에 취업했는데 코로나19라니?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일본에 남기를 결정하며,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에서 여행업계를 선택했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좋아하는 밴드의 투어를 따라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전국을 돌아보았고, 특히 팬클럽 여행에서 만난 添乗員(단체 여행을 수행·안내하는 여행사의 직원) 직종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관광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언어 차이, 문화 차이, 세대 차이 속에서 2년 동안의 학교생활. 일본 전국의 마츠리, 온천, 산, 호수, 문화재, 주요 관광지를 빠짐없이 외우고 갖은 실습과 연수를 거듭해 드디어 졸업했고, 꿈에 그리던 취업까지 했는데, 코로나 19사태가 터졌다.
삽시간에 관광업계는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입었다. 이른바 ‘업계 큰손’ 여행사가 억 단위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식과 함께 주변에서는 연일 내정취소나 소규모 여행사의 도산 소식이 들려왔다. ‘만약 이대로 내정이 취소된다면? 비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혹시나 회사가 도산한다면? 다시 취업 활동을 해야 하나?’ ... 비자와 향후 거취에 대한 불안 속에서 맞이한 4월 1일. 입사식과 환영식은 모두 취소되었고 2020년 4월의 첫 출근 이후 오늘까지 회사는 쭉 휴업 상태에 있다. 입사 후 출근 일수 단 1일. 온라인으로의 신입사원 연수가 6개월, 이후 6개월간 다시 자택 대기가 이어졌다.
일본 정부에서 야심 차게 추진했던 Go to 캠페인은 업계를 살릴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해, 회사는 코로나 19 사태 1년 만에 희망 퇴직자를 받기 시작했다. 절반가량의 사원이 퇴사를 선택했고 나를 포함해 남아있는 사원들은 거래처의 파견사원으로서 뿔뿔이 흩어져 3개월마다 계약을 연장하며 여기저기 본업과 다른 회사를 전전하게 되었다. 일본 전국을 돌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파견사원으로 온갖 회사를 돌며 생활하게 될 줄이야. 전국의 관광업계 종사자, 우리는 언제쯤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퇴사 2주 전 재택근무와 서버 폭발의 대환장 파티
20년 4월, IT업계 종사자였던 나는 곧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미 퇴사 통보와 절차를 마치고 한 달, 아니, 유급 휴가를 소화하는 날을 제외하면 실제적인 출근 일수는 2주 정도 남아있을 즈음이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협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있었고, 몇몇 대기업은 재택근무를 도입하겠다며 텔레워크, 리모트워크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당시 현장은 하라쥬쿠 번화가에 있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얼마 남지 않은 출근길에 올랐었다.
출근하자마자 프로젝트 매니저, PM이 내게 와서 이 종이에 서명해달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네, 어차피 저 곧 퇴사해요, 뭐든 주세요, 전부 해드리죠, 하고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노트북 대여 및 VPN(원격 근무를 위한 네트워크 환경 망) 연결로 인한 보안 서약서.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재택근무, 드디어 나에게도 재택근무가 시작되는 듯했다. 근데 저 이제 2주 남았는데요...? 서명이 끝나자, 매니저는 갑자기 지금 당장 기기를 전부 들고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지.... 지금요?
LTE 5G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때였지만, LTE보다 빠른 조기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VPN 설정 방법 등이 적힌 안내문을 따라 설정을 마치자 VPN 연결 화면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연결 화면이 끊겨버렸다. 당황해서 회사 팀원들의 그룹 라인에 들어가 물어보니 다들 끊긴 듯했다. 서버 자체가 다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 그러면, 저희는 뭘 할 수 있죠? 1시간 간격으로 VPN 서버에 접속 시도를 반복해서 접속에 성공한 사람만 업무 연락을 달란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해볼 수밖에. 그날은 결국 연결에 실패했다. 내일부터 정상 출근을 하겠다 싶어 블라우스를 다시 꺼내놓았다. 그리고 다음 아침도 연결 실패. 그래서 결국 출근하려고 하니, 오지 말란다. 저는 진짜 뭘 할 수 있죠?
매일 아침 일어나, 졸린 눈으로 연결되지 않는 야속한 VPN 연결 화면에 들어가 접속 여부를 확인했다. 역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다시 잘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나는 잘 하지도 않던 게임을 켰다. 우리 회사 서버는 터졌는데 게임 서버는 멀쩡해서 열심히 게임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일주일 뒤에는 정말 퇴사해야 하는데 인수인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결국 전원 출근하는 것은 무서우니, 나만 이틀 정도 회사에 나와 퇴사와 인수인계 준비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주 가까이 일을 못 한 것 때문에 쭈뼛대며 출근했더니, 작업을 못 한 건 회사의 문제였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아량이 넓은 회사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퇴사하지...
어두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인수인계 작업을 마치고 퇴사했다. 매니저가 출근해서 그간 수고 많았다고 인사했다. 집까지 전철로 30분 거리였지만 그 날따라 걷고 싶었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기도 하고, 첫 퇴사였는데 많이 허전하고 내가 잘한 게 맞나 계속 긴가민가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코로나요? 제가요?
여느 때와 같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일주일이 참 길었다. 며칠 전에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은 친구한테서 감기가 옮았는지 화요일 하루를 꼬박 앓았고, 옷 갈아입을 힘도 없어 잠옷을 입은 채 무거운 몸을 겨우겨우 끌고 병원에 가서 약도 받았다. 그 와중에 또 재택근무로 일은 쉬지 않았다. 겨우 감기 때문에 일을 쉰다는 건 한국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도 병원에서 받은 약이 효과가 좋은 편이었는지, 목요일부터는 기운이 나서, 약 48시간의 침대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감기도 다 나았고, 이번 주말엔 뭘 하면서 놀지? 우선 아침부터 먹고 생각해야겠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바나나를 까고 한 입 앙, 베어 물었다.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건포도로 가득 판 봉지를 열어 코를 박았다.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라벤더 향이 진한 바디 오일 뚜껑을 열었다. 역시 아무 냄새가 없다. 그리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19 양성이 나왔으니, 나도 농후 접촉자로 분류되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친구의 검사 결과가 느지막히 나왔기 때문에, 요 며칠간 일반 감기인 줄 알았던 것이 코로나 19였던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결국 PCR 검사를 받은 후 정식으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나의 증상은 몸살, 오한과 약간의 기침,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후각 상실이었다. 특히 후각 상실은 약 일주일간 이어졌다.
일본의 코로나 19 확진자 처리 방식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나는, 생각보다 허술한 일 처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PCR 검사 후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격리할 필요는 없다’니. 단순히 내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집에 콕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격이고, 일도 재택근무이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로 인해 생겨난 코로나 19 양성 환자가 얼마나 많았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코로나 19 양성 확진을 받고 회복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슬프지만, 아직도 코로나 19는 계속 유행 중이다.
영화 찍는 게 과제인데 모이지 말라니요
코로나 19 바이러스 대유행과 팬데믹 선언 당시, 나는 20학번으로 일본 모 대학의 영화학과로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입학 후의 모든 대학 생활에는 감염확산방지대책이 항상 따라다녔고,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코로나 19 사태 이전의 대학 생활이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수의 인원이 대면으로 모여야만 하는 실습식 수업에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재학 중인 학교는 여타 대학들처럼,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좌학수업 (座学授業/좌학수업)은 한 교실에 제한된 인원만 들어가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영화학과는 전공 수업의 대부분이 좌학수업보다,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가며 영화를 만드는 실습수업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집합금지를 외치는 이 시국에, 무리 지어 다니는 검은 옷의 사람들(영화 촬영 시, 창문이나 렌즈 등의 빛 반사를 막기 위해 검은색이나 어두운색 옷을 입는 것이 기본이다.)을 좋은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작게는 크랭크업(crank up/촬영이 끝난 것을 의미) 기념 우치아게(打ち上げ/회식)가 모두 사라졌고, 평소라면 별문제 없이 촬영 장소를 대여해 주었을 곳에서 급히 장소 대여를 금지해 촬영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좀 더 심각하게는, 강좌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창궐한 전염병을 하늘길이 막혀버려, 매해 여름에 개최하는 한일공동영화제작수업(자매결연을 맺은 한국 대학과의 공동영화제작 수업)이 벌써 두 해째 취소됐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촬영에 몰두하는 활발한 대학 생활을 기대했건만, 무척 실망스럽다. 하루빨리 전염병이 종식되기만을 기도하는 중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순간
여행업계에 몸 담근 지 어느덧 5년 차. 여행업계는 사실 코로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작년 1월부터 업계의 불황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일하던 호텔 프런트 직을 그만두고 2020년 1월, 외국계 회사로 이직했는데 인사팀의 설명으로는 2020년은 현 일본 지사 설립 이래로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한 해라고 한다. 내 동기는 31명으로, 파격적인 채용의 이유는
2020 도쿄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입사 직후 바로 요코하마에서 크루즈선 프린세스 호 발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일어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세계 경제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당장 수개월 후에 있을 올림픽의 개최는 불투명해졌고, 판데믹 선언으로 각국의 국경이 폐쇄되자 회사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우선, 숙박 예약 취소 문의가 빗발쳤다. ‘예약취소 규약에 상관없이 상황이 상황이니 무조건 환불해달라’는 고객들의 성화에 하루하루가 전쟁통이었다. 동종 업계의 경쟁 회사들도 줄줄이 도산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2020년 5월, 결국에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세계 각국 지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정리해고하겠다는 중대발표가 떨어졌다. 나와 내 동기들은 입사 타이밍이 하필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 시기와 겹쳤던 탓에, 무려 입사 3개월만에 다짜고짜 해고 통보를 받게 됐다. 모두가 퇴근한 오후 6시에 CEO로부터 전 사원들을 향해 날아온 메일 한 통. 지금부터 2시간 이내에 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는 사원은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결국 32명의 동기 중 20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일본 오피스 전체 사원 약 200여 명 중 80명이 직장을 잃었다. 정당한 이유없이 부당하게 해고 통보를 받은 사원들도, 영문도 모른 채 남겨진 사원들도,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회사 분위기는 단번에 어두워졌다. 본사의 지시 때문에 아끼는 부하 직원들과 사원들에게 현 상황과 퇴사 절차를 설명해야 했던 당시의 일본 지사의 리더는 끝내 미팅 중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충실했던 사원들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나 자신도 아끼고 의지하고 친했던 동료들을 갑자기 잃어버려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운이 좋아 회사에 남겨졌을지라도 절대로 안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전염병은 우리 삶의 형태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요코하마와 수도권 각지에 속속 들어섰던 신규 오픈 호텔들은 오픈하자마자 휴업에 들어가야 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이미 취소될 예약 건은 얼추 정리가 된 건지, 고객들의문의보다 호텔에서 문의가 밀려들어 왔다. 이유인즉슨 매출 감소로 임시휴업에 들어가야 하니, 지금 확정된 예약도 모두 다 취소해달라는 것이었다... 호텔 프런트 직으로 일하던 시절의 전 직장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보통 하루에 약 110건에 육박하던 체크인이 현재는 20건에 불과해 출근일수를 본사에서 줄였고, 파트타임 근무자들도 희망 근무시간만큼 일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총 12층 중 절반은 아예 소등하고 저층수만 운영한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도 밤에 요코하마의 미나토 미라이를 걸어보면, 상당수의 호텔들의 객실 불이 꺼져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 바이러스가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줬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먼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풍경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켠이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찬다. 쓸쓸하고 안타깝고 답답하고 슬픈 그런 감정들.
'BACK NUMBER_2022上 > 2021.가을.vol.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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