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교엔에서의 꽃놀이
일본에서의 첫 꽃놀이는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입사하기 일주일 전에 일본에 들어온 나는 도쿄의 벚꽃을 보겠다는 야심을 가득 안고, 꽃놀이로 유명하다는 우에노 공원에 갔다. 그리고 꽃보다 많은 것 같던 인파에 묻혀 내 한 몸 쉬이 앉힐 곳을 찾지도 못한 채, 간단하게 먹으려고 사간 샌드위치마저 먹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집에 돌아왔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기억을 첫 꽃놀이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두 번째 봄엔 ‘이번엔 꼭 성공적인 꽃놀이를 하겠다’고 더 야무지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나의 계획에 동참할 친구들도 모았다. 우리는 각자 집에서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도시락을 싸서 신주쿠 교엔에서 만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우에노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엔 사람이 몰리기 전에 공원에 도착했고, 성공적으로 자리도 잡았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는데 여기저기 벚꽃이 얼마나 많은지 눈을 한 곳에 둘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환상적인 풍경과 함께라면 흰 주먹밥이라도 꽃향기에 취해 천상의 맛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얼마나 기대하며 열심히 준비한 도시락이었던가.
도시락과 챙겨온 과자들을 펼쳐두니 세 명이 먹기엔 과한 진수성찬이었지만 풍경과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식사를 했다. 다들 평소보다 훨씬 들뜬 목소리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도시락을 먹으니 순식간에 그 많던 음식들이 사라졌다. 나른한 기분과 은은한 꽃향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잘한 웃음들이 첫 꽃놀이의 기억으로 남았다.
이 첫 꽃놀이의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매년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어김없이 꽃놀이를 하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스며든다. 올해는 첫 꽃놀이의 추억을 되새기며 신주쿠 교엔에서 또 다른 꽃놀이의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다.
카나가와 현, 레몽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로 갈 때
한국인 유학생 친구가 사는 동네의 수변공원에 벚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이 사람은 훗날 나의 룸메이트가 된다.) 그날은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고, 몽글몽글한 햇살에 저절로 잠이 쏟아지며, 콧구멍 속으로 따뜻한 온풍이 들락거리는 완연한 봄날이었다. 구청의 렌털 자전거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자, 대형 마트와 공단의 맞은편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수변공원이 나타났다. 벤치와 자전거 도로, 그리고 흐드러지게 벚꽃이 핀 공원은 마치 <짱구는 못 말려>나 <아따맘마> 같은 만화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었다. 친구를 따라 공원의 가장 끝으로 달리자 작은 사무소가 있었고, 그곳에서는 1인당 300엔을 내면 90분 동안 카누(!)를 빌릴 수가 있었다.
직원에게서 노를 젓고 배를 움직이는 방법을 배운 후,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수칙 설명을 들었다. 2인용 카누에 함께 타기로 했다.(배 탄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라고 꽥꽥거리긴 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탔다.) 두 사람이 타자 배가 쑥 하고 가라앉길래 '역시 내가 너무 무거운 탓이다'라고 주저했지만 부력은 상당히 강력했고 몇 번 노를 저어보니 무서움도 금방 사라졌다. 카누를 탄 우리는 놀러 나온 강아지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노를 젓지 않고 물살에 배를 맡긴 채 천천히 멋대로 흘러가 보기도 했다. 카누 운전이 익숙해지자 친구가 "저 밑으로 지나가 봐요!"라고 나를 불렀다. 그곳엔 강 쪽으로 한껏 기울어진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벚꽃 그늘 밑으로 천천히 카누를 몰았다. 그러다 강바람이 훅 하고 불었다. 분홍색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카누와 우리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향긋한 벚꽃 그늘 밑에서 사진도 찍고, 손으로 꽃송이도 만져보고, 벚꽃 향기도 맡았다.
왜 옛날의 왕과 귀족들이, 굳이 대궐에서 마셔도 될 술을 배에서 마시며 뱃놀이를 즐겼는지 알 것 같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 강바람과 물결에 몸을 맡긴 채 꽃덤불 속을 흘러다녔던, 꿈같은 봄나들이였다.
도쿄도, 에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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