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떠나요, 현 경계를 넘어서
첫 이사는, 일본에 온 지 9개월 차(!)에 저질렀던, 도쿄 서부에서 도쿄 동부와 인접한 치바(千葉)현의 마츠도(松戸)시로의 이사였다. 어리바리 구한 첫 집에서 살며 날로 불만이 가득해졌다. 아르바이트로 돈도 얼추 모으고 일본어도 꽤 능숙해졌을 무렵, 일본부동산업체가 선간판으로 세워놓은 매물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전철 노선이나 역과의 거리, 건축연도에 따라 월세가 천차만별이라는 것도, 일본의 방 구조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전문학교 입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기도 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우연히도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동료가 치바(千葉)에서 통학을 하고 있어서, 치바현 중에서도 도쿄와 인접한 곳을 중심으로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사는 생각보다 귀찮고 번거로웠다. 살던 집의 해약금 조항이 있었고, 짐은 적지만 이동거리가 멀어 견적이 비싸게 나와 돈도 꽤 깨졌다. 그렇지만 새집을 본 순간 지금보다 충분히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나 혼자 일본어로 계약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뻤다.
12월 중순의 이사 당일, 현관문에 어깨가 끼일 것 같은 덩치의 이삿짐센터 직원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책 상자며 냉장고며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데 벽이나 가구에 생채기 하나 없었다. 1시에 시작한 이사가 끝난 건 오후 4시쯤. 이삿짐 상자에 둘러싸여, 해가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며 침대에 앉아 한숨을 돌리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조명이 없는 걸 깨닫고 털레털레 슈퍼에 형광등을 사러 갔었다. 집 구하시는 분은 조명의 유무도 꼭 확인하시길.)
도쿄도, 에이타
첫 이사, 도움을 받는 일은 도움을 배우는 것
첫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에 성공하며 도쿄도에 무사히 새 거주지도 찾았다. 그 동안 규슈(九州)와 간사이(関西) 지방 일대는 여행으로 많이 다녀서 지리를 잘 알았지만, 칸토(関東)지방에는 발을 디딘 적도 없었고 특히나 도쿄라는 큰 도시는 한국에서도 지방에서 자란 나에게 너무나 넓은 곳이었다. 일본에서 경험하는 첫 이사였는데 난이도는 불지옥이었다.
일본에서의 첫 거주지이자 원래 살던 사가현에서 도쿄로 내 터전을 바꾸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도쿄에 가본 적도 없었고 그 큰 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 지리부터 공부해야했다. 상대적으로 월세가 낮은 구역은 어디인지, 외국인 여자 혼자 살기에 그나마 괜찮은 곳은 어디인지, 말로만 듣던 시부야와 신주쿠와 도쿄역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등등 갖가지 조건들을 따지며 여러 부동산에 발품을 팔고 다닌 끝에 도쿄도 카츠시카구 끝자락에 위치한 적당한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일본에서의 두 번째 집을 찾을 수 있었고 계약도 매끄럽게 성사됐다.
문제는 이사였다. 반도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 일본의 섬과 섬 사이의 이사라는 개념을 이해하기까지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섬에서 섬으로 짐을 옮기려면 배와 비행기 등 여러가지 수단이 있고, 교통 수단에 따라 견적도 천차만별이다. 일본에는 이런 장거리 이동을 전문으로 하는 이사 업체가 있으니 업체와 상담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당장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던 엄마에게, 이 모든 개념을 포함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 큰 일을 혼자서 다 할 수 있겠냐'며 걱정하셨고, 결국 일본까지 건너와 짐정리를 도와 주셨다.
첫 집은 사가현이었고, 이전 회사 사택이었기에 퇴사를 하며 그 집에서도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근처에 친구가 한 명 살고 있어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갖가지 내 모든 이삿짐들을 다음 내 일본 거주지가 정해질 때까지 친구의 집에 맡겨둘 수가 있었다. 이제 도쿄에 새로운 주소도 생겼으니 다음 절차는 그 많은 짐들을 도쿄까지 가져오는 것이었다. 사가현은 규슈(九州)라는 섬에 속해있는 지역이고, 도쿄도는 보통 '본섬'이라 부르는 ‘혼슈(本州)’ 에 있다. 더군다나 사가현에서 도쿄까지 약 1,000 km 이상 떨어져있다고 생각하면, 여간 막막한 거사가 아닐 수 없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삿짐을 맡아주신 친구의 부모님께서 이삿짐 센터에 모든 짐을 꼼꼼히 인도해주셨고, 그렇게 내 물건들이 1,000 km 를 날아서 도쿄로 도착했다. 일본 첫 번째 집에서 배운 ‘내 공간의 소중함’ 을 지키기 위해 또 열심히 집을 꾸몄고, 물리적인 위치는 바꼈지만 아늑함은 그대로 옮겨왔다. 그렇게 무사히 일본에서의 첫 이사를 마쳤고, 인생에서 마주한 큰 고개를 하나 더 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막막해보이는 것도 막상 차근차근 해 나가면 별 것 아닌 일들이 많다. 그리고 생각 외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은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도 내 주변에 있어 주시는 분들의 많은 도움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거야.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오늘도 인생을 도움받고 또 주변에 도움을 베풀며 그렇게 얽히며 살아가야지 생각한다.
카나가와 현, Je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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