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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NUMBER_2022上/2022.봄.vol.03

첫, 처음 ①: 일본에서의 첫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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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 타죠

첫.
처음.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일본에 발을 딛은 그 날부터
내가 겪고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싹트기 시작한 말입니다.
매년 이맘 때면 만개하는 일본의 벚꽃처럼 
나의 서툰 시간에 무성히 핀
'첫'과  '처음'.


지금도 채 떨어지지 않은 이 말들의 가지를 엮으면
제법 재밌고 멋진 꽃다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도쿄 스기나미구의 회색빛 원룸

내 첫 보금자리는, 한국 부동산 업체가 구해준 스기나미(杉並)구의 다다미 6조 크기의 원룸이었다. 집 앞의 작은 건널목이 있어, 노란 세이부신주쿠(西武新宿)선 열차가 지나다녔다. 세탁기를 놓을 수 없는 대신, 건물 2층에 코인란도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월세는 5만 5천 엔이었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은 회색처럼 보였다. 세로로 길쭉한 형태의 방에는 어두운 밤색의 나무마루 바닥과, 복도 중간에 어중간히 위치한 손바닥만 한 부엌, 뒤돌면 바로 화장실 문이 있었다. 부동산중개인은 도쿄에 이 정도 방이면 대궐이라 했는데, 같이 집을 본 엄마는 중개인이 떠나자 "이게 어딜 봐서 사람 집이냐 새 둥지지"고 화를 냈다.

10개월 정도 살았다. 모든 일본 생활의 장단점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북향인 것과 함께 인접한 2층 단독주택과 담장 때문에 발코니에 좀처럼 햇볕은 들지 않아 한여름에도 빨래가 마르기는커녕 썩어버렸다. 건물 내 코인란도리는 너무 지저분해서 빨랫감을 들고 동네의 사설 코인란도리로 갔는데, 오명 가명 양말을 몇 짝씩 잃어버렸다. 옆집의 이웃은 거구의 중국인 남자였는데, 늘 친구들을 데려와 시끄럽게 굴었다. 뭐라 대꾸할 만큼 일본어를 잘하지도 못하던 때라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 잠드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집에선 유독 한국 꿈을 자주 꿨다.

 

도쿄도, 에이타


드디어 나도 독립이다! 근데 기숙사를 곁들인.

일본에서의 첫 집은 8제곱미터의 작디작은 넓이의 기숙사였다. (지금도 기숙사에 살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때는 ‘처음 혼자 산다!’하는 설렘이 컸다.) 방에 욕실이나 주방이 딸린 종류도 있었지만 나는 기본인 ‘방’만 있는 것을 택했다. 유학생은 월세만 내면 특별히 조식과 석식을 제공해줘서 편했고, 전기세와 수도세, 인터넷도 월세에 포함되어 여름이든 겨울이든 마음껏 냉난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제공: AC Photo

기숙사에서 같이 살던 다른 유학생 친구들은 이것저것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딱히 문제를 느껴본 적이 없다. 소음에 둔한 편이기도 하고, 내 생활과 관계없는 소음이면 아예 신경을 끄고 살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과 세탁실 바로 앞방에 살았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기숙사가 과연 좋으냐는 질문에 내 경험이 좋은 참고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딱 하나 단점이라면, ‘옆방 운’이라고 해야 하나, 도중에 옆방에 입주한 사람이 바뀌었는데, 그 사람은 일 년 내내 방문을 열어놓고 생활했다, 그래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그 방 안 상황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게 된다는 건 꽤 당황스러웠다. 그런 것들만 빼면, 기숙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든 통학의 편리성의 면에서든, 내겐 썩 나쁘지 않은 첫 집이다.

 

도쿄도, 냠


참 희다, 처음 내 집에 발을 들인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도쿄, 네리마(練馬) 구에 얻은 첫 집은 벽지, 바닥, 가구 할 것 없이 흰 것으로 채워졌다. 베란다 밖으론 8차선 도로가 지나가는데도, 집 안은 진공의 공간처럼 적막했다. 먼지 한 조각이라도 보일까 무던히 청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공간 속에는 늘 나 혼자 누렇고 검은 것으로 있었다. 종종 이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 누렇게 찌든 담배얼룩 같이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무색무취의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내 집에서조차 이방인이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제공 : AC Photo

휴직과 함께, 누리끼리한 곳으로 이사했다. 벽지는 때가 끼어 있고 마룻바닥은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또 온 집의 문을 닫아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 소리 따위가 스며들어왔다. 집안의 구석구석에 뭔가가 묻어 있었다. 때인지 얼룩인지, 원래부터 그런 색인지 무늬인지가 구별되지 않는 곳이었다. 형형색색의 공간 속 나 역시 색이 있었다. 퍽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나는 흰 것이 아니야. 나는 사라지지 않아. 그렇게 몇 번인가 되뇌곤 머리칼과 먼지 따위가 굴러다니는 누런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도쿄도,타죠

 


첫 집, 너의 따뜻함이 나를 구했어.

 일본 호텔에서 내정을 받고 그 곳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은 계기 중의 하나는 ‘주거 환경 서포트’ 였다. ‘회사에서 사택을 제공할테니 매 달 월세는 절반만 부담하면 된다’는 파격적인 조건에 마음이 안 끌릴 리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은 ‘월세 살이’ 인데, 그것이 덜어진다면 얼마든지 외국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흔쾌히 입사승낙서에 서명을 하고, 그렇게 일본 사가(佐賀)현에서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사가현의 바로 옆 동네인 후쿠오카는 많이 가 봤어도 사가현은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제공받은 집은 신축에, 1LDK ( 리빙 룸 하나, 다이닝 룸 하나, 키친 하나를 통칭하는 용어 ) 라 넓었고, 어마어마하게 멋졌다. 건물의 현관 문을 열고 2층 계단을 올라가야 방의 현관문이 나오는 식이었는데, 새로운 구조의 인테리어라 마음이 너무 설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집을 나와 줄곧 혼자 살았기에 원룸 인테리어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일본에서의 첫 집이 생기자 하루하루 집을 꾸미는 즐거움으로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씻어 내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집은 궁전 같았고, 집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담아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아늑하고 포근한 마이홈에서 힐링했던 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 한 켠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지친 나를 보듬어줬던 따뜻했던 나의 일본 첫 집, 잘 지내니.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난 잘 지내. 부디 다른 주인들에게도 너의 따뜻함을 나눠주길 바래. 안녕.

 

카나가와 현, 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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