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CK NUMBER_2022上/2022.겨울.vol.02

일본 겨우살이: 방한용품 이야기

728x90
펄펄 끓는 온돌 바닥에다가 호떡처럼 배와 등을 뒤집어가며 몸을 '지져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 이웃들은, 일본의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국소(?) 난방 대작전
유탄포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제공: AC Photo

유탄포(湯たんぽ)는 돌려서 여닫는 뚜껑이 달린 물주머니다. 촉감이나 디자인을 위해 천 커버를 세트로 파는 제품도 있다. 질기고 두꺼운 고무로 만들어진 유탄포에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닫으면 준비 끝. 책상에 앉아 일할 때 무릎에 올려놓거나, 껴안고 책을 보거나 한다.
온몸을 구석구석 지져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에게 유탄포는 시시할지도 모르지만, 일정 부위에 강력한 따뜻함을 원할 때 이만한 게 없다. 생리통 때문에 배가 당겨 오거나 허리가 아플 때, 겨울에 온몸을 움츠리느라 무릎 관절이나 어깨가 아플 때, 끓인 물을 담은 유탄포를 가져다 대면 통증이 아주 살살 녹는다. (물론 화상에 주의!)
나는 엄마가 쓰던 유탄포를 받아서 쓰는데, 어쩌다 국방색을 샀는지는 몰라도 아주 전투적으로 추위를 물리쳐 줄 것 같아 올겨울도 든든하다.

 

도쿄도, 에이타


눈 건강과 방한까지
아이 마스크

눈가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눈 건강과 수면에 좋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아이 마스크를 방한용품으로 얘기하자니 머쓱하기도 하지만, 쓰면 쓸수록 방한에도 충실한 물건임을 실감한다.
최근에 구매한 아이 마스크는 천으로 된 재질에 안에 팥(!)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전자렌지에 데워 쓰는 제품이다. 두툼하고 무게감도 있으며 200-300회 정도 쓸 수 있어 다회용이라는 점도 맘에 들었다. 크기도 커서 눈과 콧등 절반까지 덮어주는데, 아이마스크 덕분에 비염 환자인 나의 수면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눈 건강 관리용으로 산 아이 마스크가 코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니, 콧속이 건조해 찢어지거나, 숨쉬기가 불편하던 현상까지 많이 개선됐다. 덤으로 고소한 팥 냄새는, 윈터 에디션 아로마테라피.

 

 

도쿄도, 에이타


Francfranc에서 구매한
팬히터

물건을 살 때 성능보다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어느 날 Francfranc의 매장을 둘러보다가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제품을 발견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결제하고 집까지 모셔온 팬히터. 심플한 디자인에 따뜻한 바람을 훅훅 내뿜어주니, 방 안 공기가 건조해지는 일 없이 난방이 된다.
무엇보다 제일 맘에 드는 점은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내가 원하는 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팬히터 하면 발갛게 달아오른 코일이 윙윙 돌아가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디자인도 현대적인 데다가 터치로 조작하는 형식이라니.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할 나위가 없다. 이 팬히터 덕분에 실내가 추운 일본 겨울도 몇 년째 따끈하게 보내는 중.

 

카나가와현, 쥬디


따뜻한 숙면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수면양말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제공: AC Photo

수면 양말은 최소한의 가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방한용품이자 가볍게 주변인들에게 주고받기 좋은 선물이다. 수면 양말의 지혜는 근래에 생긴 것이 아니다. 할머니 댁에서 볼 수 있던 꽃무늬 요술 버선은 수면 양말의 지혜를 농축해놓은 할머니들의 지혜 주머니로, 요새 들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잘 때도 양말을 신는다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수면 양말을 신고 며칠을 자고 단 하루, 수면 양말을 벗고 다시 자보면 다음 날 아침 바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수면 양말을 신고 자면 체온이 1도가량 올라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숙면을 돕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글을 여러 번 읽는 것보다 한번 해보는 게 훨씬 낫다. 바로 다음 날 색색깔의 보들보들한 수면 양말을 고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카나가와현, 레몽


계륵의 고타츠

고타츠(炬燵)는 일본의 대표적인 난방기구로 흔히 담요와 히터가 달린 테이블을 뜻한다. 일본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애니메
이션이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겨울날 고타츠에 둘러앉아 귤을 까먹거나 고타츠에 달린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든가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타츠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를 품은 분도 많은 듯하다. 실제 사용하는 입장에서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좋기는 하지만 그다지 추천할 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에 있다면 있는 걸 버리기도 아까운 그런 애매한 가구 또
는 가전제품이 고타츠인 것 같다.
단점부터 우선 나열하자면 초기 비용이 그럭저럭 든다, 무겁다, 전용 이불과 카펫 관리가 귀찮다, 저온 화상의 위험성이 있다, 좌식 생
활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허리와 무릎에 부담이 올 수 있다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평소보다 더 게을러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
꼈으며, 일본 만화의 자주 결말로도 자주 나오는 ‘고타츠에서 잠들어서 다음 날 감기에 걸리는 일’도 실제 경험했다.
이런 단점들을 다 커버할 정도라곤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점도 있다. 겨울에 내 집에 온 가족과 친구들이 춥지 않도록, 오손도손
한자리에 모이도록 이끈다는 점, 그리고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어 따뜻하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런 점이 코타츠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집에 두게 만드는 것 같다.
친구와 친구네 가족의 백신 접종이 이번 달이면 끝난다. 그러면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같이 전골 요리나 먹을까 한다. 그리고 무겁다고
귀찮다고 투덜거리며 벽장에서 고타츠를 꺼내겠지.

 

도쿄도, 조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