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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NUMBER_2022下/2022.여름.vol.04

[일본생활 공감]일본살이 あるある : 이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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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chinon

 

죄송합니다, 이름을 다시 한번… : 예약용 일회용 이름을 만든 사연

나는 사실 한국에서도 되게 드문 성씨를 갖고 있다. 중국식 성씨이기도 해서, 그래서 일본어로 어떻게 읽고 써야 하는 건지부터 무지 망설였다. 오죽하면 회사에서도 ‘명함용 서체가 해당 한자를 지원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명함도 서명도 다 영어로 등록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술집의 문 앞의 예약장부에  이름을 써야 할 일이 빈번해지면서, 점점 사소한 스트레스가 늘었다. 일본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라, 예약 장부에 쓰인 내 이름을 본 직원들은 늘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잘못 발음한 직원은 계속 사과하느라 정신없고, 나는 나의 이 애매한 이름을 몇 번이고 발음하고 알려주고, '아닙니다, 저야말로(?)'라고 목례를 하느라 진을 뺀다. (여담이지만 김 씨인 룸메이트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한다. 김, 박, 이 씨처럼 일본에서도 알려진 한국 성은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그냥 레스토랑이나 가라오케에서 예약용으로 쓸 이름은 어차피 공식적으로 남을 기록도 아니고, 한번 쓰면 없어질 이름이니, 대충 나와 직원만 알면 되는 이름이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저 번거로운 소동들을 없애고 싶어, 대충 예약용 이름을 만들었다. 엄마가 김 씨라서, 대부분 金田라고 쓰고 있다. 가끔 기분 따라,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으로 써보기도 한다.

 

도쿄도, 에이타 


욘사마에게는 설명이 필요없다.

나는 '욘사마'다. 성이 연 씨인데 일본에 왔기 때문이다. 정말 성공한 사람의 명함에는 이름 석 자만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을 알 수 있기에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기분을 조금 알 것 같다. 성공한 것은 배용준 님이고, 그 덕을 보고 있는 거긴 하지만. 여러 번 이름을 확인받고, 실수로 잘못 불리는 것은 외국인에게 흔한 일이지만 '욘사마'에게는 아니다. 누구든 듣는 즉시 이름을 정확히 (물론 일본식으로ㅎㅎ) 발음할 수 있고 국적까지 세트로 자동 전달된다. 욘사마 및 한류 관련 스몰 톡으로 이어져서 대화 분위기가 좋아질 때도 많다. 이것이 한류의 힘인 것일까. 일본어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항상 주눅 들어 있는데, 이름을 말할 때만큼은 욘사마 파워를 내뿜는다. 

 

'욘 데스. 욘사마 노 욘!'

 

도쿄도, 연


나 지금 ‘켄’ 쨩이랑 있어

일본에는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 참 많다. 성으로 부를 수도 있고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고 별명(あだ名)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일본에 오기 전, 나는 내 이름 중 한 글자인 賢(어질 현)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켄 ケン‘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일본어 학교 선생님들은 남성스러운 이름이라고 만류했지만, 어차피 내 한국 이름도 중성적인 편이라 나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때부터 나는 야망을 하나 품게 되었는데, 바로 ‘친구의 남자 친구에게 의심을 받아보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주로 호칭을 쓸 때 여자에게는 보통 ‘쨩 ちゃん’, 남자에게는 ‘쿤 くん’을 쓰지만 정말 친한 친구일 때는 남자에게도 ‘쨩’을 쓸 때가 있다. 물론 나는 여자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를 ‘켄쨩’이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자인 친구와 함께 놀고 있을 때 만약 친구의 애인에게서 연락이 오면 


“나 지금 켄쨩이랑 있어.”

 

라고 말해, 애인이 ‘켄쨩? 남자랑 있는 거야?’라고 오해하게 되는 상황을 연출할 수가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까지 그런 상황이 연출된 일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긴 하지만, 언젠가 한 번쯤 그런 오해를 받아보고 싶다는 나의 심심한 야망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도쿄도, 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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