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나이다 빚나이다 만두 빚나이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이 찾아온 뒤로 벌써 다섯 번 째 큰 명절이 지나가려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명절은 서운함과 우울함으로 뒤엉키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제게는 우울할 때 마다 하는 습관, 이라기보단 ‘의식(ritual)’이 있습니다. 만두는 빚는 일입니다. 만두가 제갈량의 제의에서 비롯됐다는 설을 빌린다면, ‘우울함을 물리치는 의식’으로서의 만두 빚기 역시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을까요.
속상한 마음들도 결국 소화해야 할 것들이니. 만두 소 재료들을 잘게 다지는 김에 함께 다져버리고, 고기와 섞어 치대고, 윤기가 차르르 도는 만두피로 한 장 한 장 예쁘게 싸 둡시다. 어찌 보면 흉하기도 한 검붉은 만두 소가 하얀 만두피에 싸여 하나 둘 쌓이는 걸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에겐 ‘남의 속도 모르고’라며 원망할 때도 있지만, 만두만큼은 ‘속도 모르고’ 먹어도 맛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작년의 설날은 일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만두를 빚으며 보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한국에선 조리기능시험을 볼 때 말고는 만두를 빚은 적이 없네요. 경상도 지역이 새해에 만두를 먹는다고 하던데, 저는 가족들이 전라도 지방 사람들이라 그럴까요. 몇 천 원 쥐고 들어가면 후끈후끈, 갓 찐 만두를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집 앞에 있었던 것도 그렇고요. 참. 갈비만두는 제가 나고자란 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랍니다. 어디인지 짐작이 가실까요?
다시 만두 빚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일본 마트의 다진 고기를 파는 코너에는, 약속이라도 한듯 만두피가 함께 진열되어 있지요. 덕분에 만두빚기가 한결 쉬워진 건 당연합니다. 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수록 같이 만들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게 또 즐거움이지요. 하다보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지도 않아요! 기왕 지면을 빌렸으니, 제가 자주 만드는 갈비만두의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재료 :
◎시판 돼지갈비소스
※간장 베이스에 배 간 것이 들어간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백설에서 나온 돼지갈비소스를 애용하고 있어요. 한국 식자재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만두피 30장 정도
◎양파 반 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어서 간 민지고기(ひき肉), 300g
※취향껏 추가할 수 있는 재료 : 대파 다진 것, 마늘 다진 것, 생강 다진 것, 다진 당면 적당량 등.
만드는 법 :
①양파 반 개를 잘게 다진다
②다진 고기에 양파 다진 것, 백설 돼지갈비소스 4~6큰술을 넣고 잘 섞어준다.
③시판 만두피로 ②의 혼합물을 넣고 여며서 완성.
정말 간단하지 않나요? 사실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만두를 싸는 일이예요. 그러니 미리 소를 가득 만들어두고, 사람들을 잔뜩 불러서 빚도록 합시다. 사람들을 부리는(!) 간단한 팁이라면, 먼저 스무 개 정도만 미리 빚어 둬요. 사람들이 도착하면 바로 구워서 나눠 먹은 후, 사람들이 다음 접시를 기대할 즈음 ‘더 먹고 싶은 사람은 앞에 재료가 있으니 직접 빚읍시다’ 라고 하면 됩니다. 한번 맛 보면 더 먹고 싶을 수 밖에 없는 맛이거든요. 한번은 둘러앉아 만들다 보니 이백 개 넘게 만들었어요. 남은 만두는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 얼렸다가, 지퍼백에 담아서 돌아가는 사람들 손에 쥐어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해외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특히 이 시국이라면 더욱, 어딘가 꼭꼭 눌러담은 마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두에 꾹꾹 눌러 담는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아쉬웠던, 그리고 속상했던 마음들을 발판삼아서, 새해 행복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꼭꼭 눌러 담은 만두를 빚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도쿄도, 타죠
최후의 만찬 2019 - 우당탕탕 연말일기
문코로나19 전 2019년 12월, 나와 친구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즐겁게 송년회를 하러 밖에 나갔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6명의 여성이 서로 아주 친했을뿐더러 그 중 한 명의 생일도 껴있었기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이었기에 당연히 밖에 사람은 많았고 우리는 전철 안에 진열장 속 만두처럼 낑겨서 이케부쿠로로 향 했다. 드레스 코드를 검정으로 맞춘 우리는 어둠의 사도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저녁밥을 먹을 장소로 향했다. 중화계 사람들이 많은 이케부쿠로에,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했던 마라탕 잘하는 집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간 나와 기숙사 친구들은, 정말 말도 없이 마라탕만 먹었다. 정말이지… 생일 축하도 망년(忘年)도 신년(新年)도 뭐도 아무것도 없고 그저 묵묵히 마라탕을 먹기만 했다. 아마 가게 주인분은 ‘이 검은 무리는 뭐지’ 싶으셨을 거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난 다음, 생일이었던 친구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기숙사로 먼저 돌아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그 친구의 생일 축하 목적(겸 밤새며 놀기)으로 밥을 먹으러 번화가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한 명(이자 주인공)을 보내고, 나머지 멤버는 일찍 집에 가기는 싫어 이케부쿠로의 밤길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참을 실없는 소리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눈에 띈 패밀리 레스토랑에 디저트를 먹기 위해 들어갔다. 남은 5명의 여 성은 셀카를 찍으며 1인 1파르페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밥 먹은 지 한 시간도 안 지난 상황이었지만 알게 뭔가. 인생은 맵단맵단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라탕같이 얼얼하며 매운 음식을 먹으면 파르페나 아이스크림같이 차갑고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진다. 매번 그런 걸 보니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열심히 파르페를 먹으며 떠들던 우리는 다가온 막차 시간에 아쉬워하며, 기숙사 근처 역에서 내렸다. 터덜터덜 기숙사로 걸어가던 우리 중 누군가 한 명이 말했다.
“노래방 갈래?”
그래! 노래방이 있었지! 즉흥적인 제안이었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고, 바로 カラオケマック 라는 노래방에 들어갔다. 이미 꽤 늦은 시간이어서 밤샘(夜更かし) かし) 플랜밖에 없었으니, 우리는 새벽 5시까지 노 래를 부르게 된다. 부르다 보니 흥에 취해 술 한 모금 안 마시고 엄청나게 하이텐션이 된 우린 집에 오는 길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우리 오늘 저녁에 스키야키 먹기로 하지 않았어?”
그렇다. 우린 다음 날도 같이 놀기로 해놓고 밤을 샌 것이다. 그렇지만 방학이고 어차피 같은 기숙사에 사는데 무 슨 걱정인가. 난 친구들에게 지금 당장 장을 보러 가자 했다. 왜냐면 이대로 자고 일어나 장을 봐 요리를 해먹을 자 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 옷의 여성 다섯은, 밤을 새운 상태로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 2km쯤 떨어져 있는 24시간 마트에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 몇몇이 흠칫 놀라던 게 떠올라 되게 미안하지만 뭐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 다. 그저 피곤함에 찌들어 빨리 장을 보고 싶어 걸어가는 길 30분 동안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순식간에 장을 보고 기숙사에 돌아왔다. 다들 아침 7시에 서로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 가 숙면을 취했다. 우리는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저녁 5시에 다시 모여 밥을 하기 시작했다.
아파서 집에 먼저 들어갔던 친구는
“너희 얼굴이 왜 그래...?”라고 물어봤고 다들 피곤한 표정으로
“노래방에서... 밤을 새웠어...”라고 답했다.
스키야키를 만들어 먹으며 훈훈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려던 찰나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일 중요한 고기의 맛이 무언가 미묘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실패 없이 시판 소스를 샀고, 유튜브로 조리 방법을 찾 아가며 만들었는데 왜지? 여섯이서 웅성거리며 의문이 깊어갈 무렵 우리 중 한 명이 말했다.
“이거 돼지고기야.”
스키야키에는 보통 소고기가 들어가나, 우리는 밤을 새워서 정신이 없을 때 서둘러 장을 본다는 것이 그만 돼 지고기를 소고기로 잘못 보고 사 온 것이었다. 이미 다 차려놓은 밥상을 두고 다시 마트에 갔다 올 순 없어서, 결국 우리는 돼지고기 스키야키를 먹으며 연말을 보냈다는 즐거운 이야기다. 그러나 새해가 되고 전염병이 돌면서, 우리는 ‘다음 해에도 다 같이 모여 스키야키를 즐기자’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슬픈 결말이랄까.
도쿄도, 냠
물에 빠진 사람의 지푸라기 붙잡는 간절함으로
신입 편집 디자이너로 보낸 2020년의 연말은 괴로웠다. 작업한 페이지에서 인쇄 사고가 났다. 임원 회의에 불려갔다. 크게 혼나진 않았지만 뭘 해도 실수할 것 같아, 손이 떨려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밤 11시를 훌쩍 넘고서야 2020년 마지막 근무를 마쳤다. 내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다말고 회사 근처 역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다음 날엔 사랑니를 뽑아서, 술 한잔 마시고 푸는 것조차 못하고 끙끙 앓았다.
1월 1일의 태양은 찬란했지만, 나는 작업한 페이지가 전부 백지로 인쇄되고 책 표지에 편집장의 사과문이 실리는 악몽을 꿨다. 눈을 뜨자 가방에 달고 다니던 꾀죄죄한 부적(お守り)이 눈에 들어왔다. 2018년 일본인 친구와 아사쿠사에서 산 것이다. 친구에 의하면 부적의 유효기간은 1년이고, 아무렇게 버리지 말고 샀던 곳으로 다시 가져가면 불에 태워준댔다. 저거다. 저것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걸 자꾸 달고 다녀서 재수가 없는 거다. 영향으로 아사쿠사까지 갈 순 없어서 동네의 큰 신사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신사는 한산했다. 관계자에게 다른 곳의 부적도 태워주는지 묻자, 경내 구석을 가리켰다. 커다란 70ℓ들이 쓰레기봉투에 사람들이 가져온 헌 각종 부적 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헌 부적을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고, 기도했다. 힘차게 방울을 당기고, 한국어로 한번, 일본어로도 한번 기도했다. 같은 기도를 몇 번이고 계속 되뇌었다. 제발. 제발 들어주세요... 사람들은 참배 후 신사 한 쪽에 마련된 매대에서 신사패(御神札)를 샀다. 가방을 뒤져보니 현금이 모자랐다. 냅다 집으로 달렸다. 차디찬 자전거 페달에 두 발 언저리가 긁히고 찍혀 여기저기 하얗게 살이 까지는 것도 모르고, 책상에 올려둔 천 엔짜리 몇 장과 저금통을 통째로(!)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신사로 달렸다. 탈탈 돈을 털어 결국 제일 비싼 신사패를 사서 돌아왔다. 관계자분은 나를 미친 사람으로 봤겠지만, 그땐 운을 좋게 해주는 물건이라면 뭐든 갖고 싶었다.
2022년이 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도는 통했다. 하지만 너무 간절한 나머지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서인지 신께서는 시간을 두고 나를 보고 계신 것 같다. 한국 사람 성미에는 빨리 소망을 이루게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변화가 있었음에 만족하려 한다. 2022년엔 지푸라기가 아니라, 뿌듯하고 멋진 결과를 내 손에 쥘 수 있길.
도쿄도, 에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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