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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NUMBER_2022上/2022.겨울.vol.02

복실복실福実福実① : 일본에서 보내는 연말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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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앞, 빨갛게 언 손을 호호 불며 가슴 앞에 꼭 모아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일본의 겨울을 본다. 
한 해의 첫 달인 1월을 겨울이라는 계절에 만나는 일은, 
추위를 맞아 깃털을 한껏 부풀린 채
양지바른 볕에서 작은 두 눈을 빛내고 있는
새들의 심장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의 하루하루를 가득 끌어안은 곤한 몸은 
찬바람에 가득 움츠리고 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소망과 새로운 호기심이 솟아나고 있으니까. 
외롭고 불안하게 지샌 긴 겨울밤을 
마른 나무와 함께 주워 모아 모닥불을 지피고, 
탁탁 나무 타는 소리가 듣기 좋은 적당한 불 가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며 읽기 좋은 연말연시 이야기들을 모았다.

 

연말의 샤부샤부

일본에 온 첫해 겨울의 일이다. 첫 직장에서 첫 연말연시를 맞이한 나는 생각보다 긴 연휴에 당황했고, 성수기의 한국 비행기 가격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래서 한국에 가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일본에서 끝내주는 연말연시를 보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미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떠들썩한 연말 파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연휴로 보내면 되니까!

 익숙하지 않은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도쿄 근교에서 갈 수 있는 곳 중에 마음에 든 한 곳이 있었다. 일본의 눈 오는 마을로 유명한 시라카와고(白川郷)다. 하지만 이 여행도 성공은 아니었다. 시라카와고 투어를 신청한 가족 단위 여행객들과 커플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는 유일한 나 홀로 여행객으로서 꿋꿋하게 여행을 즐기려 했지만 어색하고도 외로운 여행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지인에게서 한국에 갔냐고 묻는 연락이 왔다. 지쳐있던 때에 온 연락이 너무 반가워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즐겁게 나누다 보니 어느새 “당장 만나서 밥을 먹자”는 약속까지 잡게 됐다. 지인은, 그간 가고 싶었는데 혼자 가기는 민망해서 못 갔던 샤부샤부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일본에서 샤부샤부를 먹어본 적 이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서 맞이하는 첫 연말연시에, 샤부샤부를 먹으며 서로의 근황과 연말의 비행기 삯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나눴다. 결론은 나지 않았던 토론이었지만 서로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다음 해 연말이 다가오자, 작년에 못 다녀온 한국행 항공권보다 샤부샤부가 먼저 생각이 났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그 지인으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샤부샤부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흔쾌히 동의했다. 이렇게 2년 차 연말에도 샤부샤부를 먹으며 연말의 근황과 새해의 목표를 이야기했다. 첫해에는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자는 느낌이 강했던 만남이, 두 번째에는 연말의 특별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같은 느낌을 공유했던 건지 그 지인으로부터 세 번째 연말에도 연락이 왔다. 이제는 서로 암묵적인 연례행사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지인은 이 샤부샤부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이번 연말에도 즐거운 이야기가 담긴 샤부샤부를 먹게 될 것 같다.

 

카나가와현, 레몽


호텔리어들의 연말 카운트다운 : 

그날, 정말로 따뜻했던 프런트데스크

 

 일본에서 연말연시를 맞는 것도 이번이 벌써 5번째다. 떠올려보면 4번의 연말연시의 추억이 있던 셈이다. 그동안 여행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남들이 쉬는 연말연시에는 당연하다시피 근무 를 했었다. 일본에서 같이 연말연시를 보낼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없는 나에게는, 그나마 마음이 맞는 회사 동료와 함께 직장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고 새해를 맞는 게 오히려 외롭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말연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을 맞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호텔 프런트 스태프로 근무 중이었는데, 호텔 프런트라는 곳의 특성상 숙박하는 고객이 언제 찾아와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공휴일은 물론 언제든 항상 누군가는 프런트 자 리를 지켜야 했다. 연말연시도 마찬가지다. 뜻깊은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을 프런트 데스크에서에서 보낼지 말지가 달려있기 때문에, 호텔 스태프들에게는 12월의 근무 시프트 발표가 항상 화제다. 말 그대로 복불복이다. 어쨌든 나는 운이 좋아서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12월 31일에는 야근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혼자 쓸쓸히 새해를 맞기는 싫어서, 친한 동료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사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했던 나의 깜짝 방문은 모두가 환영해주었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자들은 각자 해야 할 일들 을 하면서도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는지 평소보다 더욱 웃음기 띤 얼굴이었다. 우리는 열두 시가 되기 전 피자를 주문했고, 열두 시가 다가오자 한 선배의 제안으로 쟈니스 카운트 다운을 방송을 틀었다. 

  열두 시가 되면 매출 마감을 위해 현금을 세는데, 현금을 세는 소리, 쟈니스 방송의 소리, 우리가 카운트 다운을 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오피스를 채웠다. 5, 4, 3, 2, 1 ! 2020 년이 됐고, 우리는 서로의 새해를 축복하고 축하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린다고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객들도 1월 1일이 되는 순간에는 각자 기념하기 바빴는지, 우리 스태프들이 충분히 새해를 기쁘게 맞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둬주신 덕분에, 일을 해야 했던 스태프들도, 홀로 쓸쓸히 연말연시를 보낼 뻔했던 나도, 함께 축하하며 순간을 기억에 새길 수 있었 다. 연말연시에는 고객들과의 전화도 새해 인사부터 시작된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초면이지만, 전화 응대를 하면 먼저 “Happy New Year”, “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새해 복 많 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해주시는 멋지고 친절한 고객들 덕분에 연말연시에 근무하는 우리 스태프들도 마음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던 기억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마음을 데운다.

 

 서비스업이라는 직종은 남들이 쉬는 시기에 일하고, 남들이 일하는 시기에 쉰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순간 들을 어떻게 새기느냐는 하기 나름인 것 같다. 이미 상황이 주어졌다면 결말을 짓는 것은 내 자신 아닐까. 연말연시에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일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객들과 따뜻한 커뮤니케이션. 전우애와 비슷한 감정이 뿌리내리는 직장 동료들과의 유대감과 동료애와 같은 감정.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이것만을 일하는 보람으로 삼았다. 그랬기에 힘든 나날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추억들이 내 버팀목이다. 매해 다른 모양새로 찾아오는 그 순간들이 내 기억들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이렇게 또 한 뼘 자라는구나, 내 자신. 2022년아, 난 너무나 완벽히 준비됐어, 올 한 해도 잘 부탁해.

 

 

카나가와현, Jeudi


도쿄를 떠나 바다에서 첫 일출과 함께 하는 연시年始

 

연말연시의 반짝반짝함과 가족적인 분위기에 지치는 연말이면 괜히 바다에 가고 싶었다. 인생의 3분의 2를 버스 종점이 바다인 곳에서 자라서 그런가. 나만의 새해맞이, ‘도쿄를 떠나 바다에서 첫 일출을 본다’는 그렇게 시작됐다.

새벽 추위는, 얼어 죽어도 코트 파인 사람도 패딩 점퍼를 들게 한다. 주위가 캄캄한 가운데, 1월 1일 첫 차 인구는 의외로 상당하다. 거나하게 취해 귀가하는 사람도, 31일에도 직장에 시달린 듯한 회사원도,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과 새해 첫차를 공유한다.

졸음 속에 서 있는 것도 버거워졌을 때쯤, 미우라 연안(三浦海岸)역이다. 구글 맵과 사람들을 따라 걷다보면, 검은 바다와 하늘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생각보다 일출객이 드문 미우라 연안에서 해를 기다리며, 아직 시커먼 바닷물에다 지난해의 재수 없던 나날을 하나둘 버린다. 어느 목청 좋은 아저씨의 ‘오!’ 한 마디에 고개를 드니, 구름을 밀고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이 눈앞에 꽉 찬다. 해를 향해 꾸벅이는 사람들의 소원

들이 해님에게 잘 도착했기를 바라며, 나도 올 한해의 무사와 바다 건너 가족들의 안녕을 빌었다.

일출 스폿마다 준비하는 이벤트가 다른데, 여기에서는 귤을 줬다. 빨간 손 위로 일면식 없는 사람의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와 함께 귤이 떨어졌다. 추위로 언 내 새해 인사와 감사는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온 역에서, 이제는 평소같이 눈 부신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페이스북에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새해 인사와 함께 일출 사진을 올린다. 정월 첫날부터 부지런한 나, 이번 해는 분명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며.

 

도쿄도, 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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