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하신다면, 대체로 회사차원에서 서체의 라이센스를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서체의 영향이 덜한 디자인 회사라면 무료 폰트(이를테면 구글 폰트나 어도비 폰트 등)를 사용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일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시거나, 관련 업계에서 일을 시작하신다면 반드시 듣게 될 두 서체 디자인 회사, 모리사와와 폰트웍스를 소개하면서, 각 회사의 유명한 서체, 쓰임새가 좋은 서체들을 2부작, 길면 3부작으로 적어가려 합니다.
그전에, 제가 '일본어의 서체'에 관해 겪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옆으로 넘겨서 보세요)
모리사와(モリサワ、Morisawa)
모리사와는 일본에서 디자인 일을 한다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기업입니다. 한국의 산돌폰트, 윤폰트와 협력해 다국어 서체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라이센스 규약이 엄격하고 철저한 편으로, 서체를 가공한 로고 제작이나 상표등록 또는 영상물에 사용할 시 별도의 규약이 필요합니다. 쓰임새가 넓고 가독성이 좋은 서체가 많아서, 일본의 수많은 회사와 디자이너들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모리사와의 서체 일부는 어도비 폰트로부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두께의 종류에 제한이 있습니다.) 학생이시라면, ‘모리사와 아카데미판’이라고 해서, 학생 대상으로 저렴하게 모리사와 폰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센스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습니다. 저는 일본의 디자인 전문학교를 다닐 때 모리사와 아카데미판을 사용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입사 후에도 꽤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이 칼럼을 쓰려고 자료를 만들다 보니, 많은 서체가 새로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 디자인에서 멀어진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서체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그 트렌드가 얼마나 빠르게 시시각각 변하는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칼럼에서 소개하는 서체가 유일한 것이 아니며, 가장 좋은 것도 아니며, 이것이 전부인 것도 아니라는 점 미리 밝혀둡니다. 어디까지나,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본어 서체를 만나는 분들을 위한 작은 팁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적습니다.
서체 견본의 테스트, 라이선스, 플랜 정보 등은 모리사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https://www.morisawa.co.jp/fonts/
모리사와 추천 폰트 : 고딕계
ゴシック MB101
자면(字面)에 여유를 두고 만든 고딕체로, 한 글자씩 떼어서 보면 가나가 한자보다 약간 작게 디자인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문장 단위에서의 시각적 밸런스가 좋습니다. 긴 문장을 읽기가 좋으며 눈이 덜 피곤합니다. 그리고 페이지에도 공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길고 글자수가 많을 경우, 또는 서적의 본문에도 사용하기 좋은 고딕체입니다.
新ゴシック(新ゴ)
자면에 가득 글자가 차도록(혹은 넘치도록) 제작된 고딕체입니다. 두께(웨이트)가 두꺼워져도 가독성이 좋으며, 박력이 있기 때문에 주로 타이틀이나 로고, 타이포그래피 작품에 많이 사용됩니다.
※고딕 MB101과의 차이점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탁점의 위치나, 글자의 획 끝의 삐침의 모양 또한 다릅니다.
見出し ゴ MB1(미다시고딕)/ 中ゴシック BBB(츄고딕)
두께(웨이트)의 종류는 풍부하지 않지만, 획의 흔적이 남아 있어 정갈한 인상을 주는 고딕입니다. 실용서적의 표지, 또는 만화의 타이틀 디자인에도 무난히 사용됩니다. 박력 있는 소년만화보다는, 청춘 학원물이나 일상물을 다룬 만화에, 가늘지만 명료한 인상을 가진 깔끔한 타이틀로 쓴 경험이 있고, 혹은 경품 당첨 관련 안내문에 쓰기도 하는 등, 이 두 서체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마루고딕(둥근 고딕)
じゅん pro 쥰 프로
'모리사와의 마루고딕이라면 쥰프로지'라는 설명을 들은 후 지금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서체입니다. 모리사와의 서체 설명에 따르면,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커브를 살려 소프트한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최적회 된 마루고딕체입니다. 명시성이 뚜렷해서, 주로 어린이가 보는 만화 잡지나 학습지 작업에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또는 만화 식자 작업 중, 어린이가 말하는 대사, 또는 여 주인공이 부끄러워하며 말하는 대사를, 쥰 프로로 식자해 넣기도 했었습니다.
명조와 고딕이 시리즈로 구성된 서체
A1 고딕 / (A1 명조와 한쌍)
선획이 교차하는 부분을 먹이 번진 듯이 처리한, 둥근 고딕인 듯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고딕입니다. 저는 A1 폰트를 보고 '왠지 이 글자들 울먹울먹 하고 있지 않니(泣そうじゃない)?'라고 선배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21~2022년 사이 일반서적 디자인에서 타이틀에 상당히 많이 사용됐습니다. 둥근 고딕만큼의 캐주얼한 느낌은 아니지만, 각 고딕의 딱딱한 인상을 극복한 ‘부드러운 고딕’입니다. 2020년 전후, 일반 실용서적부터 판타지 만화나 게임 선전물에서도 굉장히 많이 사용됐습니다.
같은 기법으로 처리된 A1명조도 있습니다. 고딕에선 볼 수 없는 명조 만의 흘림을 유려하게 살리고, 먹의 번짐이 어우러진 감성적인 명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A1 고딕과 A1명조도 비교해 봅시다.
秀英にじみ角ゴシック金B(슈에이 니지미 카쿠 고식크) /秀英にじみ明朝L(슈에이 니지미 민쵸)
유려한 자체의 기본틀에, 획과 획이 교차하는 부분을 둥글게 처리해, 마치 금속활자의 잉크가 맺혀 번진듯한 서체입니다. 감정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는 서체라고 생각합니다. 서정적인 작품이나 복고풍의 일러스트와도 잘 어울립니다. 여기에 이펙트나 일러스트를 더하면 공포,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서도 사용하기 좋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업무에, 매우 애용했었습니다.
히라기노 시리즈
히라기노는 각고딕, 마루고딕, 명조,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히라기노 고딕은 히라기노 명조와의 혼용을 의식해 제작된 서체로, 고딕이지만, 획을 쓰는 방향을 의식해 획의 시작점이 뾰족하고 넓게 나팔바지의 끝단처럼 처리된 것이 특징입니다. 처음으로 일본어 조판을 공부 할 때, 히라기노 명조와 함께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히라기노 서체 간의 밸런스가 좋고, 두께(웨이트)의 종류가 많아 초보 디자이너에게 좋은 무기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가끔 복잡한 타이포 그라피를 고민하다가 「ヒラギノに救われたな(히라기노 덕분에 살았어)」라고 얘기하는 것들을 가끔가다 듣습니다.
고딕체 이야기만 해도 계속 명조체 이야기도 얽혀 들어오고, 이야기를 하자면 끝맺기가 참 힘이 듭니다.
다음 편에서는 모리사와의 명조체의 스탠더드를 짚으면서, 모리사와 특유의 붓글씨 서체, 각종 디자인 서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도쿄도, 에이타
일러스트 : 시농 (instagram.com/chi_no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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