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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그래픽 디자인 하기 1화 : 세로로 읽고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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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그래픽 디자인 하기 
1화 : 세로로 쓰고 읽기

 

 

일본에서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면서, ‘서체’를 잘 사용하는 것은 외국인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꽤 난해하고도 괴롭지만 흥미로운 일입니다. 일본어의 특성상, 가나(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아울러 이르는 말), 한자, 영문, 기호가 한 문장에 모두 등장하는 것도 꽤 흔한 일입니다. (이럴 땐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세로로도 쓰고, 가로로도 쓰고, 마구 섞어놓기도 하지요. 일본어를 사용한 조판과 타이포그래피는 정말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디자이너는, 어떻게 해야 일본어를 어색하지 않게, 읽기 좋게 배치할 있을까요? 짚고 넘어가야 할것들이 많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징검다리를 밟아가다 보면 어느새  건너편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징검다리로  ‘세로 쓰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로 쓰기가 자연스러운 일본인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한국인 디자이너의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합니다.
(※옆으로 넘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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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일본의 세로 쓰기




일본 음식점의 흔한 메뉴판.

일본에서 디자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본 생활에서 저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바로 일상화된 세로 쓰기였습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한글의 세로 쓰기 판본을 읽은 적도 있고, 평소 일본 만화책을 즐겨 읽는 편이기 때문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일이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습니다. 단 이것이 특수한 독서 상황이 아니라 '일상', '자연스러움'임을 받아들이는 것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처음엔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세로 쓰기가 익숙해지면, 디자인의 레이아웃은 더욱더 재밌고 다채로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두려워마세요!)

그러면 세로 쓰기를 왜 하는가, 어쩌다 하게 되었으며, 왜 오른쪽에서부터 읽는지를 찾아봤습니다. 옛날에 대나무 조각이나 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죽간(목간)에 글을 쓰고, 이것을 둘둘 말았다가 펼쳐 읽었기 때문에 생긴 방식이라고 합니다. 가로 쓰기와 세로 쓰기의 병용이 가능한 문자인 한글과 한자문화권의 특징인데,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활자와 서체 편에서도 다루겠습니다.

 

<손자병법>이 쓰인 죽간. 출처 : 한국 위키피디아


출근길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가끔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의 문고본 소설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수험서를 푸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설책은 세로 쓰기가 많고, 수험서는 가로 쓰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험의 답안지는 세로 쓰기로 작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읽는 만화책이나 학습지도 여전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 읽는 우철의, 세로 쓰기 책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일본인 독자들은 세로 쓰기 조판에 친숙하다는 뜻이겠습니다. 왼쪽부터 읽는 가로 쓰기가 익숙한 한국인이 일본에서 독서를 즐기려면, 세로 쓰기와 우철 서적에 적응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취학 아동을 독자층으로 한 어린이 잡지. 본문은 가로쓰기지만, 장식체나 캐치 카피는 세로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이지 번호에서 알 수 있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우철 서적입니다. 출처 : 학연 그룹(学研:Gakken)

그렇다면 세로 쓰기가 '주류'인가, 의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잡지는 레이아웃의 심미성, 또는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가로 쓰기와 세로 쓰기를 한 페이지 내에서 자유롭게 혼용하기도 하며 전문 기술서적이나 어학서적, 실용서적은 영미권과 한국과 같이 좌철의 가로 쓰기 책이 많습니다. 15년 이상 편집 디자인에 종사해 온 선배의 이야기,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에서도 점점 좌철의 가로 쓰기로 제작하는 책이 증가하는 추세라고는 합니다. 

 

편집 디자인에 특화된 어도비의 인디자인은 CJK판(China, Japan, Korea. 아시아 판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본 적 있습니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문판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세로 쓰기 관련 기능의 유무입니다. 한국에선 세로 쓰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문판 어도비 인디자인만을 사용하는 디자인 사무실도 꽤 있고, 딱히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어도비 인디자인만큼은 CJK판을 사용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시게 된다면 꼭 CJK(아시아판) 버전 사용을 경험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CJK버전에만 탑재된, 세로 쓰기 기능을 쓸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루비(한자의 읽는 법을 표기한 작은 가나 문자) 입력 기능처럼요.

 

 


 

시선의 흐름 : Z자와 N자 

왼쪽 : 한국의 한겨레 신문, 2023년 3월 20일자 / 오른쪽 :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 2023년 6월 26일자.

가로 쓰기 된 문장을 읽는 독자들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릅니다. 이것을 UI나 조판에서는 흔히 'Z자 읽기'라고 합니다. 세로 쓰기는 오른쪽이서 왼쪽으로 시선이 향하고, 'N자 읽기'라고 합니다. 알기 쉬운 예로, 한국과 일본의 신문 제1면을 가져와 봤습니다. 이를 보고 나서 아래의 도면을 보면 더욱 이것이 와닿을 겁니다.

출처 : サンプリント


미팅에서 레이아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자리에서 슥슥 러프를 그려가며 설명을 주고받는 순간이 있죠. 편집자나 기획자의 레이아웃 지시서나 기획서에서 두 기호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두 기호가 한 지면에 난무하는 일이 흔합니다.

오른쪽 : <귀멸의 칼날> 정기 기사 (출처 : 소년 점프 J Books)

일본에서 지면에서 세로 쓰기를 활용할 때는 반드시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배치해야겠습니다. 독자에게 먼저 읽히고 싶은 요소는 오른쪽 위에 오도록 합니다. 일본풍(일본어로는 和風와후)의 요소를 많이 사용하는 디자인 작업에서는 더욱 세로 쓰기는 중요해집니다. (일본풍 디자인에 대해서도 언젠가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물론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파격적인 비주얼을 위해서, 또는 읽는 순서의 중요도가 낮은 지면일 경우 이를 무시하는 일도 꽤 비일비재하니 예외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시를 위해 가져온 위의 지면도, 정기 기사의 제목(小説版鬼殺隊報)과 주제가 되는 인물(胡蝶姉妹) 이 오른쪽 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앞서 가져온 일본의 신문 1면과 비슷합니다. 소식지라는 특성을 염두한 디자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문과 본문 내의 소제목은 모두 세로 쓰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의 부제목이나 캐치카피 등은 가로쓰기 되어있는 등, 지면을 읽는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장치들도 보입니다. 

 

왼쪽 : 스퀘어에닉스 간간 온라인 「わたしの幸せな結婚」 / 오른쪽 : 아메바 망가 「王の獣」. 

세로 쓰기를 활용한 예시를 가져와봤습니다. 아래는 번역문이며, 일본어의 낫표(「」)안에 들어간 문장이 작품의 제목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로고의 기능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겠습니다.


왼쪽 배너의 읽는 순서 : 結婚から始まる恋愛の物語、「わたしの幸せな結婚」(결혼부터 시작하는 연애의 이야기, <나의 행복한 결혼>)
오른쪽 배너의 읽는 순서 : 弟の敵をとるため、女であることを捨てた悪人の少女。男装の獣×皇子 異世界ロマンスファンタジー「王の獣」(남동생의 적을 죽이기 위해, 여자이기를 버린 악인 소녀. 남장의 짐승 × 황자의 이 세계 로맨스 판타지, <왕의 짐승>)

독자들로 하여금 이 만화를 읽고 싶게 하기 위해서는, 예쁜 일러스트와 만화의 제목이 가장 잘 띄어야 할 것입니다. 지면은 좁은데도 들어가야 하는 문장은 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일러스트를 최대한 가리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는 크기와 간격을 갖춰, 행갈이를 한 문장을 넣어야 합니다. 이럴 때 세로 쓰기는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왼쪽 : 알바몬 영상광고(출처 : 유튜브) / 오른쪽 :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한국판 포스터

여담입니다만, 한국의 디자인 작업물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세로 쓰기, 또는 혼용 사례가 자주 보입니다. 틀렸거나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독자에게 익숙한 방식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일 것입니다. 아래의 밈도, 읽는 순서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한국은 문장을 세로로 적어도 역시 왼쪽부터 읽는 독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막 제작자의 의도 : 섹시도발 / 시청자 : 섹도시발..?


한국도 국한문 혼용시기에는 세로 쓰기가 일반적이었고, 일본과 같이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었습니다. 현재 50~60대 이상의 연령대에게는 익숙할 수 있지만, 가로 쓰기가 일반화된 이후 독서를 시작한 세대에게는 세로 쓰기는 낯선 방식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에선 세로 쓰기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게끔 배치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서점에 가보자

 

저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직업의 일환으로 서점을 자주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읽고 사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일본에서는 '보기 위해' 갑니다. 일본의 서점에는 정작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책의 표지나 띠지뿐만 아니라 각종 부록이나 팝업 카드 등을 봅니다. 어떤 서체가 요즘 유행인지, 어떤 책엔 어떤 색깔을 많이 쓰는지, 종이에 어떤 가공을 했는지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 갑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 혹은 저와 같은 취미를 가진 분들을 위해 일본(도쿄 기준)의 대형 서점 체인들을 몇 곳 소개합니다. 역과 접근성이 좋은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곳도 많아서, 일본 여행길에 들르기도 좋습니다. 다양한 사이즈와 두께의, 이국의 책을, 직접 손에 들고 좌로 우로 펼치며 만져보는 경험은 분명 재밌고 색다를 것입니다. 


三省堂 산세이도(https://www.books-sanseido.co.jp)

 

三省堂書店

神保町いちのいち (雑貨)

www.books-sanseido.co.jp

 

くまざわ 쿠마자와 (https://www.kumabook.com)

 

くまざわ書店

くまざわ書店のホームページです

www.kumabook.com

丸善ジュンク堂 마루젠쥰쿠도(https://www.junkudo.co.jp)

 

ジュンク堂書店 公式サイト| 書籍・雑誌、文具・雑貨等の販売

書籍のことならジュンク堂書店へ

www.junkudo.co.jp

紀伊國屋 키노쿠니야 (https://www.kinokuniya.co.jp

 

紀伊國屋書店ウェブストアのトップページ

電子書籍ストアKinoppy、本や雑誌やコミックのお求めは、紀伊國屋書店ウェブストア!

www.kinokuniya.co.jp

蔦屋書店 츠타야(https://store.tsite.jp
※TSUTAYA와 같은 회사지만, 영문으로 표기한 TSUTAYA는 게임, 영화를 빌려보는 렌털샵입니다. 

 

蔦屋書店ポータルサイト | 上質なライフスタイルを提案する書店

上質なライフスタイルを提案する書店

store.tsite.jp

 

글 : 도쿄도, 에이타

일러스트 : 시농(instagram.com/chi_no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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