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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NUMBER_2022下/2022.여름.vol.04

[ISSUE]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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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름은 참 이미지메이킹이 잘 된 계절이다. 
상상 속 일본의 여름은 청량하고 
맑은 청춘의 계절이지만 현실 속 일본의 여름은……
물 반 공기 반의 습기찬 공기,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장마가 지나면 숨쉬는 것조차 힘든 게 일본의 ‘현실’ 여름이다. 

이런 뜨거운 무더위에 지칠 땐, 이 문장을 말 끝에 붙여보자. 
지평선 위로 수북하고 탐스럽게 쌓인 뭉게구름, 
짙푸른 하늘, 
먼 발치의 매미소리, 
바닷가를 달리는 청춘들의 하얀 웃음소리, 
오렌지색과 보라색으로 물드는 긴 저녁 노을, 
귀를 가볍게 두드리는 귀뚜라미 소리, 
물에 젖은 싱그러운 풀냄새-상상의 여름이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여름의 자두를 좋아하세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제공: AC Photo

이르면 5월부터 가을의 10월까지 함께 하는 여름 과일, 자두. 원래부터 나는 복숭아보다 자두였지만, 도일 후 외양부터 품종까지 다양한 자두에 반해서, 조금 진심이 되었다. 도내(都内)에서 볼 수 있는 품종 중 기억에 남았던 맛있는 자두를 소개한다.


우선, 일기예보에서 장마 이야기가 나오는 6월이 되면 오오이시와세(大石早生)를 사들여야 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품종으로, 상처없고 붉은 기가 균일한 것으로 고르기만 해도 성공이다. 꿉꿉하고 흐린 장마 시즌, 입으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大石早生와 幸せ는 아무 관계 없겠지?)일 거라 생각한다.

 

장마가 끝난 시기에 추천하는 품종으로는 타이요우(太陽)가 있다. 빨강을 넘어 보라색같이 보이는 외견에, 흔히 보는 자두보다 크기가 크다. 원래부터 산미가 적은 종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숙성시켜도 단맛이 엄청나게 증폭돼 자두 특유의 신맛이 싫은 사람에게 딱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맛있었던 품종을 꼽자면 키요우(貴陽). 복숭아 정도의 크기에, 고급 품종이다. 완숙 상태로 점포에 나오기에 나마가시(生菓子)같이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한다. 한 번쯤은 과일에게 지갑을 바쳐도 괜찮을 것 같을 때 추천한다.
무더위에 입맛 잃기 쉬운 여름에도, 여름의 맛이 찾아온다. 새콤달콤한 자두가 당신을 구원하길 바라며!

 

... 여름이었다.

 

도쿄도, 쥬니

 


 

사무실에서 살아남기 : 나만 더운 사무실에서 쾌적하게 일하는 방법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나는 일본의 여름이 너무나 싫다. 찌는듯한 더위 자체의 괴로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보다 더위를 전혀 타지 않는 것 같은 일본인들이 버겁다. 청춘의 계절이라며 밖에서 부활동이며 물놀이며 뛰어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이나 서핑을 즐기러 더 더운 오키나와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 , 하물며 여름 마츠리와 불꽃놀이까지. 난 에어컨이 없다면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실제로 6~7월에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송풍만 가동한 전철이 다니기도 하고, 회사도 8월이 되기 전까지는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는다. 나는 책상 위에 툭툭 떨어지는 땀을 가까스로 닦고 있는데, 바로 뒷자리에 앉은 일본인 선배는 춥다며 담요를 둘러쓰고 덜덜 떨며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있다. 대체 ’28도 송풍‘이 어딜 봐서 냉방이냐고. 나는 데모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탕비실에서 마주친 동료가 ‘오늘은 쌀쌀하네요’라며 뜨거운 커피를 타고 있는 걸 보면 온 세상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만 같다. 게다가 나는 살집도 있는 체형이라 여름이면 혼자 사무실에서 흠뻑 땀에 절어있는 내 모습이 더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올해로 이 사무실에서도 3년 차인 지금. 나의 여름 맞이 준비는 해마다 더욱 발전하고 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제공: AC Photo

복장은 되도록 땀이 잘 흡수되고 금방 마르는, 얇지만 비치지 않는 재질의 나일론 블라우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면 소재의 옷엔 금방 소금이 앉고 땀자국이 밴다. 그런 내게 여름옷의 수명은 짧기 때문에, 시마무라(しまむら) 패션센터나 유니클로에 가서, 싸고 사이즈만 맞으면 사다 입는다. 그래서 여름 옷의 투자는 최소한만 한다. 단벌 신사 전략. 그리고 내 자리에 선풍기를 두 대 설치했다. 탁상용 선풍기는 물탱크와 필터가 달려 있는데, 물을 채워 넣어 기화열로 공기를 시원하게 해주는 타입이다. 그리고 한 대는 크기가 조금 크지만 책상 밑에 넣어서 발과 몸 전체를 시원하게 식혀준다. 둘다 소음이 적은 쪽으로 골랐지만, 탁상형이 역시 물탱크 때문인지 소음이 다소 있는 편.책상 밑의 선풍기는 너무 조용해서 끄고 퇴근하는 걸 잊은 적도 있다. 

외근을 다녀오거나, 혹은 정말 더워 죽겠는데도 여전히 냉방을 틀어주지 않는 날엔, 화장실 칸에 들어가 옷을 벗고(!) 쿨티슈로 온 몸을 사정없이 닦아준다. 여기에 파우더 스프레이까지 착착 뿌려주면 방금 목욕하고 나온 것 같은 뽀송함을 느낄 수 있다. 쿨티슈를 접어서 바지 허리나 브래지어 사이에 끼워 놓으면, 시원함이 오래간다. (피부가 약한 분들은 쿨티슈가 젖어 있기 때문에 짓무를 수 있으니 주의!)특히 비가 온 날엔 양말을 벗고 쿨티슈로 발을 닦아준 다음에, 여분의 새 양말을 챙겨 중간에 갈아신으면 일하는 도중의 기분전환에도 좋다.

최근 회사 내에서는 ‘역시 우리 회사 너무 덥지 않아? ’라고 하소연하는, 나의 더위 동지가 생겼다. 그래서 함께 회사에 이야기해서, 에어컨 바람이 좀 더 잘 나오는 자리로 옮기게 됐다. 여름은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짜증나는 계절이니까, 어떻게든 시원하고 개운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여름은 그래서 일의 효율도, 감정의 효율도 떨어지기 쉬운 계절이라고 한다. 습하고 더운 건 몇년을 살아도 여전한 일본이지만, 모두 매년, 쾌적하고 즐겁게 일본의 여름을 보낼 수 있길.

...여름이었다.

 

 

도쿄도, 에이타


겁쟁이라도 괜찮아. 여름밤의 공포게임.

 

여름이 되면 더위를 날려 줄 공포 영화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처럼, 나는 요즘 공포 게임의 유튜브 실황 중계에 푹 빠져있다. 어느 날,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두운 숲에서 눈을 뜬다면? 거기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살인마가 나를 찾고있다면? 목숨을 건 공포의 술래잡기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 이다. 어두운 배경과 긴장감 넘치는 음악,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추격전이 백미지만, 무시무시한 비쥬얼의 살인마와 끝내 도망치지 못하면 붙잡혀 갈고리(!)에 걸리게 되는 잔혹한 묘사 때문에 비위가 약하거나 고어 요소에 면역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즐기기엔 매우 험난한 게임. 

 

하지만 여기, 공포 게임을 한순간에 개그로 만들어버리는 스트리머가 있다. 자칭 にわか (니와카:대수로운 전문 지식은 없지만 유행에 편승하여 팬을 자처하는 사람) 게이머로,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약 2년간 본업은 기타리스트지만 본업만큼이나 게임에 진심이 된 사람의 게임 채널. 공포 게임을 어떻게 개그로 만드냐고? 부디 직접 경험해보시라. 웃다보면 여름의 더위 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테니까.

 

...여름이었다.

 

 

도쿄도, SWAN

 

 


 

손수건과 양산을 들고 다니게 된 이야기

illustration by chinon

일본의 여름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그 아래 내리쬐는 눈부신 햇빛, 그 빛을 받아 더 강렬하게 반짝이는 푸른 잎사귀, 노랑 빨강 제각각의 색깔을 뽐내는 꽃과 열매, 시원하게 들이치는 하얀 물결… 아마도 미디어에서 주입받은 여름의 이미지들일 것이다. 일본에 와서 처음 겪은 여름도 비슷했다. 일본에 오기 전 보았던 여러 청춘영화에서 그려진 일본의 여름 풍경을 보며 여름 축제에서 먹는 달콤한 사과 사탕, 그리고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소바 한 그릇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강력한 햇빛과 자외선을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가는 피부,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 자판기에서 갓 뽑아 마신 시원한 음료의 첫 한 모금이 순식간에 미지근하게 느껴질만큼의 열기. 여름의 땡볕 아래 길을 걷고 있자면 햇빛의 빛과 열이 마치 ‘무게’같아서 어깨가 더 무거웠다. 그렇다. 일본의 여름은 ‘무게'가 있었다. 습도라는 이름의 무거운 공기가, 빛을 머금고 더욱 몸을 불려서 내려 앉았다.

혼자만의 싸움에 지친 나는 선배들의 지혜를 배워보기로 했다. 일본이라는 땅에서 태어나 자라 오랫동안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보고 배우자! 그때부터 열심히 주변 사람들을 지켜봤다. 지하철에서 열심히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는 아저씨, 화장실의 파우더룸에서 물티슈로 목덜미와 팔을 닦아내 뽀송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아가씨, 따가운 햇빛 속 양산을 방패처럼 꺼내 든 채 당당하게 걸어가는 할머니.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막강한 여름을 나약하게 부채 하나로 견뎌낼 생각을 하다니. 바로 나의 패배를 시인하고 양산과 손수건을 준비했다. 여름용품을 마련하니 내 가방은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좀 더 가벼워졌다. 더 이상 여름의 외출이 무섭지 않았다. 겨우 두 가지를 갖춘 것만으로도 매우 든든했다. 그리고 효과도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땀이 흐르기 전에 손수건으로 닦아내니 몸도 덜 찝찝하고, 더 깨끗해진 기분도 들었다. 양산은 펴고 접는 게 귀찮았지만, 그 귀찮음에 비해 햇빛이 바로 칼로 자른듯 차단되는 것에 감동해 ‘이젠 양산 없이 햇빛 아래를 어떻게 걸어갈까’ 싶을 정도였다. 이래서 다들 양산을 쓰는구나!


심지어 양산은 내가 원래 알던 좀 더 화사한 재질의 양산과는 다르게 겉 부분만 화사한 색깔이고 내부는 새까만 색깔이었는데, 이런 구조여야만 빛과 함께 열기까지 차단해준다고 하니 역시 보고 배우길 백번 천번 잘한 것 같다.

 

...여름이었다.

 

카나가와현, 레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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